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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만 우려 하루만에 또…정부 "집단소송·징벌적 손배 도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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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오른쪽)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 대표실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예방한 뒤 발언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오른쪽)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 대표실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예방한 뒤 발언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22일 여야 대표를 만나 '공정경제 3법' 추진에 대한 재계의 우려를 전한 지 하루 만에 정부가 또 다른 기업 규제인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확대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집단소송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피해자에 대한 효율적 구제수단이 아니라 기업에 대한 '합법적 협박'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나온다"며 "기업을 옥죄는 법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50인 집단소송서 진 기업, 모든 피해자에 동일한 배상 책임  

법무부는 23일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확대 도입하는 '집단소송법 제정안'과 '상법 개정안'을 오는 28일 입법예고 한다고 밝혔다.

집단소송제의 골자는 피해자 50인 이상이 모여 모든 분야에서 기업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내서 승소하면,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모든 피해자도 동일한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기존에는 증권 분야에만 적용됐다.

정부는 집단소송 허가요건을 대폭 완화했다. 예를 들어 3년간 3건 이상 관여자는 참여가 제한되는 대표당사자 요건이 삭제됐다. 피해자들의 주장과 입증 책임을 경감하기 위한 장치도 마련된다. 기업이 자료 등 제출 명령을 정당한 이유없이 따르지 않으면 피해자가 주장하는 현상이나 내용이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하게 된다. 집단소송을 제기하기 전이라도 소송 전 증거조사가 가능한 '한국형 증거개시제'가 도입된다. 집단소송의 1심 사건은 국민 배심원이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적용하기로 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기업들이 영업행위 과정에서 반사회적 위법행위를 한 경우 피해자들이 입은 손해 이상을 배상하도록 하는 제도다. 정부는 손해의 최대 5배까지 배상 책임을 물겠다고 했다. 반사회적 위법행위의 예로 가습기 살균제, 디젤차 배출가스 조작, 사모펀드 부실판매 사건, 가짜뉴스 등을 들었다. 가짜뉴스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자신과 가족들 관련 보도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서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최근 도입을 주장했다.

법무부는 "효율적 피해구제·예방이 이뤄지게 되면서 동시에 기업의 책임경영 수준이 향상돼 공정한 경제 환경과 지속 가능한 혁신성장 기반이 함께 조성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대기업 빌딩. [연합뉴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대기업 빌딩. [연합뉴스]

"징벌 대상 아님을 기업이 입증하란 건 가혹…중소기업 못 버틸 것"

재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이경상 대한상의 경제조사본부장은 "정부가 기업 부담을 늘리는 법안을 입법 추진하는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로 어려운 기업들에 경영 불확실성을 더욱 키운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일방적 추진이 아닌 기업 의견을 반드시 청취하고 논의하는 절차가 마련되길 바란다"며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하면서 징벌 대상이 아님을 기업에게 입증하라는 것은 기업에게 가혹하다"고 강조했다.

제도가 도입되면 소송이 남발·악용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성격상 소송액이 불어나 금전적 폭리를 노린 브로커들이 집단소송을 선동해 기업들의 소송 리스크가 커질 것"이라며 "특히 중소기업들이 대상이 된다면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도 '소송지 쇼핑(변호사들이 소비자의 피해구제보다 가장 큰돈을 벌 수 있는 주 법원을 찾아다니는 현상)'등 부작용을 막기 위해 집단공정소송법을 따로 제정했다.

이러한 이유로 20대 국회에서도 해당 법안은 폐기됐다.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법안검토보고서에서 "집단소송은 개별 당사자들의 비용이 매우 적게 들기 때문에 패소 부담은 적은 반면 변호사는 많은 보수를 기대할 수 있어 남소 가능성이 있다"며 "집단소송이 제기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업의 신인도가 저하되는 등 기업의 대외경쟁력이 약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국내 법체계에 맞지 않아 위헌 가능성도 제기된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기존의 과징금 부과 및 형사처벌과 동시에 이뤄질 경우 헌법상 이중처벌금지 원칙과 과잉금지 원칙에 반한다는 의견이다. 집단소송제도의 경우는 소송에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은 피해자에도 영향을 미쳐 헌법상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원칙적으로 집단소송제 도입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얼마나 합리적으로 제도화할지가 쟁점"이라며 "더 만만치 않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경우는 오남용을 막고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의 가능성이 적은 제한적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광우·김수민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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