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 통신비 지원한다더니…"적은 돈으로 기분만 상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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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당초 만 13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2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던 '전 국민 통신비' 지원 정책이 나이에 따른 선별적 지원으로 바뀌었다. 국회서 통과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 극복을 위한 4차 추가예산경정(추경)안에 따르면 통신비 지원 대상은 만 16~34세 청년층과 및 만 65세 이상 노인층으로 제한됐다.

정부가 '들어가는 예산에 비해 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을 수용해 통신비 지원 예산을 9289억원에서 3989억원으로 줄인데 따른 결과다. 하지만 지원에서 배제된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돈이지만 지원 대상 선정 방식에 의문이 든다"는 반응이다.

'전국민 통신비' 정책 관련 홍보물. 뉴스1

'전국민 통신비' 정책 관련 홍보물. 뉴스1

30대 직장인들 "내가 세금 더 많이 내는데"

당초 기획재정부는 청년기본법상 청년(17∼34세)과 노인복지법상 노인(65세 이상)에게만 통신비를 지원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추경의 수혜 계층을 최대한 넓혀야 한다”며 '전 국민 통신비 지원'으로 바꿨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국민 모두를 위한 정부의 작은 위로이자 정성"이라고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회 통과 과정에서 '전 국민'이라고 홍보했던 정부의 말과 달리 지원대상이 바뀌자 "오히려 국민의 마음을 악화시키는 정책이 아니냐"는 격앙된 목소리가 나왔다.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 직장인 박모(39)씨는 "커피 몇 잔만 덜 마시면 되는 적은 돈이라 크게 실망스럽진 않지만 준다고 했다가 뺏어가니까 나쁘게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다만 처음부터 안 줘도 될 예산이었는데 정부가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한다는 인상만 남겼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직장인 이모씨(37)는 "'회사 후배보다 내가 세금을 더 많이 낸다'는 생각에 기분이 더 나빴다"고 전했다.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2020년도 제4회 추가경정예산안'이 통과되고 있다. 뉴스1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2020년도 제4회 추가경정예산안'이 통과되고 있다. 뉴스1

선별 지원 기준이 왜 나이인지도 의문을 표했다. 직장인 고모(40)씨는 "나는 지원대상에서 배제돼도 큰 상관은 없다"면서도 "단순히 나이를 기준으로 삼은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다. 고씨는 "차라리 저소득층을 선별해 지원하는 방안이 더 낫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직장인 A씨(37) 역시 "지금 코로나로 힘든 건 35세나 34세나 다 마찬가지"라며 "위로 차원이라면 지원금액을 1만원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A씨는 "삭감된 예산만큼은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지원 대상에 든 30대 초반 직장인들 역시 "2만원으로 큰 변화가 없다"며 감흥이 없다는 반응이다. 직장인 정모(30)씨는 "전반적인 지원금 정책에는 찬성한다"면서도 "포퓰리즘 성격이 짙은 지원보다 취업 등 다른 국가정책에 이 돈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지원금을 받게 될 진모(33)씨 역시 "아예 어린 학생들이라면 모르겠지만 통신비 2만원은 나에게 큰 의미가 없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들은 9월 통신비 중 2만원을 10월에 차감 받게 된다.

여당 "말씀드렸던 만큼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

더불어민주당은 '전 국민 통신비 지원'이 무산된 것에 대해 "국민께 말씀드렸던 만큼 도와드리지 못하는 것에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야당의 제안 가운데 가능한 것을 수용한 것으로, 처음부터 유연하게 협상에 임하자고 했었다"며 "시간이 늦지 않게 추경을 처리하게 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번에 합의된 4차 추경안은 7조8147억 원 규모다. 이중 이번 여야 합의로 통신비 지원금에서 빠진 5300억원은 ‘독감 백신 무료접종’과 '코로나 백신' 예산에 투입된다. 독감 백신 무료접종은 105만명분이 추가되고 ‘코로나 백신 예산’도 1840억원 늘었다. 또 초등학생 이하에만 지원하기로 했던 ‘돌봄비’도 중학생까지로 확대키로 했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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