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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신용자도 저금리’ 기본대출권? “이재명, 금융·복지 혼동”

중앙일보

입력

가난한 사람에게 이자가 싼 대출을 내주는 것이 ‘공정한 금융’일까.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기본대출권’을 화두로 꺼내들었지만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금융과 복지의 영역은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중앙포토

이재명 경기도지사. 중앙포토

기본대출권은 공정금융? 

“부자들만 이용하는 저리 장기대출 기회를 국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하고 미회수 위험(신용리스크)은 정부가 인수하자.” 이재명 지사가 말하는 기본대출권 개념이다. 그는 “수탈적 서민금융을 인간적 공정금융으로 바꿔야 한다”며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이재명 지사는 신용도가 낮은 국민이라도 저금리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금융사가 저신용자에게 대출을 내줄 때는 연체율을 고려해 높은 이자를 매기는데, 정부가 보증을 서는 형태로 싸게 돈을 빌려주자는 것이다. 이재명 지사는 그러면서 “대부업체의 연체율은 7~8%에 불과하니 이를 정부가 인수한다 해도 이들이 복지대상자로 전락한 후 부담할 복지비용과 큰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금융과 복지 역할 다르다”

기본대출권을 주장한 이재명 지사의 페이스북 글.

기본대출권을 주장한 이재명 지사의 페이스북 글.

이에 금융전문가들은 금융과 복지의 역할을 혼동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금융은 영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신용도에 맞는 이자를 부여해 원금 손실 가능성을 회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이민환 인하대학교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상환 능력이 없는 차주에게도 대출을 내준다면 애초에 금융이 아니라 복지”라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복지 차원으로 정부가 기본대출의 손실을 감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정책 효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민환 교수는 “정책은 수혜 대상과 기대 효과, 소요 비용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런 면에서 진짜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그냥 보조금을 주는 게 낫다. 대상자가 몇 명이고 비용은 얼마가 들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전 국민 대출은 기존에 금융 이력이 없어 상환능력을 예측할 수 없는 사람에게까지 저리로 대출을 내주는 것인데, 보조금이라면 주고 끝나지만 대출은 연체가 발생하면 추심 비용도 들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행정 낭비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영 한양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생활비가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현금 대출보다 사회보험제도 사각지대를 없애고 교육·돌봄·주거 관련 복지를 강화하는 편이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저신용자에게 저리로 대출을 해준다면 최소 창업과 연계된 자금, 즉 고용을 창출하거나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쪽으로 유인해야지 생활비로 소진하게 될 돈을 저리로 대출해준다는 것은 사회 전체나 개인의 자활에 도움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중·저신용자 시장 사라질 것”

저신용자 저리 대출이 금융 시장의 기능을 마비시킬 것이란 주장도 제기된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부도율과 신용 위험에 따라 금리를 차등화하는 것은 전 세계 금융 시장의 원리”라며 “저신용자들도 1~2%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면 은행과 공공기관을 제외한 캐피탈사·저축은행·대부업체 같은 중·저신용자 금융 시장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부업계 관계자는 “신용도 6~10등급 대상인 햇살론도 18%로 대출해주는데 이는 저신용자들의 연체율을 고려할 때 대출 원금을 까먹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 18%의 금리는 받아야 한다는 뜻”이라며 “이미 2018년 법정최고금리를 27.9%에서 24%로 낮춘 뒤 대부업체 폐업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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