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살인 부른 '로또 1등의 비극'…"형의 우발적 범행" 감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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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 당첨금을 가족에 나눠주고 지인들에게 빌려줬다. 하지만 빌려준 돈은 받지 못했고 생활이 쪼들리면서 형제간 갈등으로 비화됐다. 말 다툼끝에 동생을 살해한 형이 항소심에서 감형받았다.

전주고법, 징역 15년 원심 파기하고 9년 선고 #로또 당첨 뒤 지인에 돈 빌려줬으나 받지 못해 #정육점 차렸으나 경영난 겹쳐 형제 갈등 시작 #

항소심 재판부 “징역 15년→9년”

광주고등법원 전주재판부. [뉴스1]

광주고등법원 전주재판부. [뉴스1]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제1형사부(김성주 부장판사)는 11일 동생을 살해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A(58)씨의 항소심에서 징역 15년의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9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10월 11일 전북 전주의 한 전통시장에서 동생 B씨(50)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비극의 씨앗은 로또 1등 당첨이었다. 경찰 등에 따르면 A씨는 2007년 로또 1등에 당첨됐고 피해자인 동생 B씨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돈을 나눠줬다. 동생은 형이 준 돈을 보태 집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형제간 우애가 깊었다고 한다.

돈 빌려간 지인들 잠적에 경영난

 A씨가 로또에 당첨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돈을 빌려달라는 지인들의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A씨는 그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고 억대의 당첨금도 금새 바닥을 보였다. 돈을 갚겠다고 약속했던 지인들은 연락 두절 상태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새로 연 정육점 경영난까지 겪게 됐고 동생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하지만 금융기관에서 빌린 대출 이자조차 갚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상환도 늦어지면서 형제의 다툼이 잦아졌다. 동생을 살해한 날도 형제가 전화로 말다툼을 하다 술에 취한 A씨가 전북 정읍에서 전주에 사는 동생을 찾아간 것으로 드러났다.

2심 재판부 “우발적 범행 판단”

 A씨 측 변호인은 1심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이 우발적 범행을 저질렀고 속죄하고 반성하고 있으며 사건 전에는 우애가 깊던 점을 참작해달라”고 선처를 호소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A씨가 정읍에서 범행 현장까지 도착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범행계획을 중단하지 않았다”며 ‘계획범죄’로 봤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살인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중범죄”라면서도 “피고인이 사건 당시 술을 마시고 피고인을 찾아와 우발적으로 범행한 것으로 보이고 피해자 가족이 법원에 선처를 탄원하는 처벌불원서를 제출했다”고 양형 감경 사유를 밝혔다.

 이어 “피고인도 범행을 인정하고 진심 어린 반성을 하는 것으로 보여 감경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의 형은 너무 무거워 보여 형량을 다시 정했다”고 설명했다.

전주=김준희·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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