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트럼프, 북한 김정은에겐 핵무기가 너무 사랑해 팔 수 없는 집이라 말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격노(Rage)』

『격노(Rage)』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핵무기의 관계에 대해 “부동산을 너무 사랑해 도저히 팔 수 없는 사람과 비슷하다”고 평가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9일(현지시간) 전했다. 이날 WP와 CNN은 ‘워터게이트 특종’의 주인공 밥 우드워드 WP 부편집인이 오는 15일 펴내는 신간 『격노(Rage)·사진』의 일부 내용을 사전 입수해 보도했다.

밥 우드워드 신간 『격노』서 밝혀 #김정은 친서엔 ‘트럼프 각하’ 9번 #“트럼프, 그의 아첨에 넘어갔다” #미국, 2017년 북한과 핵전쟁 우려 #매티스 국방, 근무복 입은 채 잠자 #트럼프 “김정은 건강하다” 트윗

우드워드는 이 책을 쓰기 위해 트럼프와 18차례 보도를 전제로 인터뷰했다고 밝혔다. 인터뷰는 지난해 12월부터 올 7월까지 진행됐으며, 모두 합쳐 9시간 분량이다. 인터뷰를 허용한 이유는 명성에 집착하는 트럼프가 우드워드를 통해 정치 유산을 남기고 싶어 했기 때문이라고 CNN은 해석했다.

트럼프는 우드워드에게 자신은 김 위원장과 그가 가진 핵무기의 관계를 집주인과 부동산처럼 평가한다고 털어놓았다. “말하자면, 마치 어떤 사람이 어떤 집이 아주 마음에 들어서 도저히 팔 수 없는 거랑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정보기관 수장들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 같지 않고, 트럼프의 접근법이 실효성이 없다고 경고하고 있음에도 트럼프는 우드워드에게 자신은 지금의 항로를 유지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또 중앙정보국(CIA)은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른다고 일축했다.

트럼프는 김 위원장과 세 차례 직접 만난 데 대해 “나는 만났다. 그건 엄청난 일(big fucking deal)”이라고 말했다. 우드워드는 트럼프가 김 위원장과의 관계를 방어할 때 비속어를 썼다고 했다.

트럼프는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을 처음 만났을 때 너무나 경이로운 나머지 속으로 “이런 젠장(Holy shit)”이라고 되뇌었다고 털어놓았다. 김 위원장이 “영리함을 훨씬 넘어서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김 위원장과 매우 친해졌다고 우드워드에게 과시하면서 김 위원장이 고모부 장성택을 어떻게 처형했는지 생생히 설명했다고 했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뒷말도 나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김 위원장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개자식(asshole)”으로 생각한다고 우드워드에게 전했다. 김 위원장이 실제로 한 말인지, 트럼프의 생각인지는 불분명하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의 카펠라 호텔에서 정상회담 뒤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함께 퇴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신화=연합뉴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의 카펠라 호텔에서 정상회담 뒤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함께 퇴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신화=연합뉴스]

『격노』에는 트럼프가 김 위원장과 주고받은 편지 27통이 담겼다. 이 중 25통은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이 김 위원장에게 보낸 친서 내용은 우드워드와 공유하지 않았다. “일급비밀”이라는 이유에서다. 우드워드는 트럼프가 김 위원장에게 보낸 친서는 별도 경로로 입수했다고 밝혔다.

이날 WP가 공개한 발췌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한 편지에서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저와 각하 사이의 또 다른 역사적 만남을 원한다”고 썼다. 또 트럼프와의 만남이 “소중한 기억”이라면서 “우리 사이의 깊고 특별한 우정이 어떻게 마법의 힘으로 작용할지 잘 보여준다”고 적었다.

김 위원장이 2018년 12월 25일 보낸 친서에는 트럼프를 아홉 번이나 ‘각하(Excellency)’로 불렀다. 우드워드는 “트럼프는 자신을 각하로 부른 걸 자랑스럽게 얘기했다”며 “트럼프는 김 위원장의 아첨에 넘어갔다”고 적었다.

트럼프는 자신이 김 위원장에게 두 사람의 사진을 1면에 실은 뉴욕타임스 지면을 보냈다고 밝혔다. 흰 종이에 마커로 “위원장님, 멋진 사진, 좋은 시간이었다”고 적어 보냈다고 한다.

『격노』에는 2019년 2월 27~28일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미가 장소를 놓고 완강히 대치한 내용도 담겼다. 1차 정상회담 장소가 미국 주장대로 싱가포르로 결정되며 김 위원장은 항속 거리가 짧고 노후화된 전용기 ‘참매-1호’ 대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전용기를 빌려 타는 굴욕을 당했다. 북한은 2차 정상회담 때 그런 굴욕을 피하기 위해 평양 정상회담을 설득했으나, 트럼프 대통령 참모들의 반대로 하노이로 합의됐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2019년 6월 10일 트럼프 생일 축하 편지에선 “또 한 번 역사의 환상적 순간을 만들자”며 3차 정상회담 개최를 호소했다. 이 편지는 결국 20일 뒤 판문점 회동으로 이어졌다.

밥 우드워드

밥 우드워드

우드워드는 트럼프 행정부 국가안보팀이 북한과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2017년 북한과 핵전쟁에 근접했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고 적었다. 당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북한의 발사에 대비해 옷(근무복)을 입은 채로 잠잤고, 기도하기 위해 성당을 자주 찾았다고 우드워드는 적었다.

책에는 코로나19 사태 초기 트럼프가 바이러스의 위력에 대해 깎아내렸지만, 정작 본인은 얼마나 치명적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트럼프는 올해 2월 7일 우드워드에게 전화해 “공개적으로 말한 것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며 “공기를 들이마시기만 해도 옮긴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를 의식한 듯 10일 “우드워드는 몇 달간 내가 한 말을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위험한 줄 알았다면 왜 즉시 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이를 보도하지 않았는가. 그는 내 대답이 적절하고 좋은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침착하라. 당황하지 말라”고 반박성 트윗을 올렸다. 또 별도의 트윗에서 “김정은은 건강하다. 절대 그를 과소평가하지 말라”고도 올렸다. 갑자기 왜 김정은의 건강을 언급한 것인지에 대해 추가적인 설명은 없었지만, 우드워드가 신작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의 관계에 대해 기술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워싱턴=박현영·김필규 특파원, 정효식 기자 hypar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