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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는게 값 된 라이더 운임…최저운임 반대하는 뜻밖 이유

중앙일보

입력

"건당 4000원의 '안전배달료'를 도입해야 한다."

배달기사들의 독립노조 라이더유니온이 지난 3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라이더(배달기사)들이 차량 유지비와 사고 부담 등을 떠안는 만큼 최저 운임을 보장하자는 취지다. 라이더는 원할 때 원하는 만큼 배달을 '위탁'받는 일종의 프리랜서(개인사업자)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속하지 않아 4대 보험 의무 가입 대상이 아니고 야간·연장수당과 퇴직금 등도 받지 못한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이날 "10년 전에도 배달료는 2000~4000원 수준이었다. 음식값에 녹아있던 것이 모바일 플랫폼 등장으로 소비자 눈에 보이게 된 것 뿐"이라며 "현재 배달의민족 등 대형 플랫폼, 바로고·부릉 등 배달대행사 라이더가 받는 최저 운임은 건당 약 3000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방으로 갈수록 상황은 더 열악하다"며 "최저임금이 2배 뛸 동안 라이더 운임은 동결 상태"라고 설명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이 지난 3일 온라인 간담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 미디어데모스 캡처]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이 지난 3일 온라인 간담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 미디어데모스 캡처]

'부르는 게 값' 된 라이더 운임

최저 운임제 주장 이면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치열해진 배달시장을 둘러싼 '라이더 모시기' 경쟁이 있다. 배달통을 밀어내고 3위 사업자로 올라선 쿠팡이츠는 아예 기본요금을 없애고 주문량·동선·날씨 등을 고려해 운임을 정하는 '탄력요금제'를 내세웠다. 쿠팡이츠에 따르면 라이더의 최종 수령액은 건당 최저 3500원에서 최대 2만원(우천할증 및 프로모션 포함)이다. 서울 지역은 통상 4000~8000원 사이를 받는다.

'부르는 게 값'이란 건, 라이더 입장에선 몸값이 들쑥날쑥하다는 뜻이다. 똑같이 일해도 운수 좋은 날엔 많이 벌지만, 운수 나쁜 날엔 최저시급만도 못 번다는 사실이 이들의 불안을 가중시킨다. "기업의 선의나 단발성 프로모션으로 운임이 높아져 봤자 지속 가능하지 않다(구교현 라이더유니온 기획팀장)"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 음식 배달 앱 순위.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국내 음식 배달 앱 순위.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최저운임 도입되면 고수익 힘들어"

반면 일부 라이더들은 '바닥을 높이자'는 라이더유니온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플랫폼 경쟁 덕에 수입의 천장(天障)이 사라져 좋다"는 것이다. 한 배달 플랫폼 관계자는 "많이 일할수록 많이 버는 지금의 구조에 만족하지만 (고용·산재보험 등) 최소한의 안전은 보장해달라는 입장이 현장의 지배적 분위기"라며 "최저 운임을 정해버리면 오히려 고수익 올리기가 어려워질 것이라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고개를 갸웃한다. 지난해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 플랫폼 노동 정책을 담당했던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언택트 호황으로 배달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텐데, 경쟁을 통해 이미 높은 운임이 형성된 시장에서 (생계 보장 차원의) 최저운임제를 도입할 당위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시장 지배적 사업자와 노조가 최저 운임을 고정해버리면, 싼 배달료를 내세운 신규 플랫폼의 진입이 막혀 소비자도 선택의 여지 없이 높은 배달료를 내야 한다"며 "일종의 임금 카르텔 효과가 생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금불균형 마주한 '플랫폼 노동'

코로나19 여파로 폭주한 배달량에 플랫폼 간 '라이더 모시기'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코로나19 여파로 폭주한 배달량에 플랫폼 간 '라이더 모시기'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여러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건 현시점에 배달량은 치솟고 업계에 진입하는 이들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배달량이 많은 서울 지역 대형 플랫폼 라이더의 운임은 건당 4000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문제는 적게 버는 쪽이다. 지난해 기준 평균 300원의 배달대행사 수수료(한국노총 분석)와 개인사업자 원천징수 3%를 떼고 나면 지방 라이더들이 쥐는 돈은 3000원 미만일 때가 많다. 수입이 적은 탓에 최소한의 생계비를 벌기 위해 무리한 운행을 하다 사고를 낼 확률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배달산업은 어느새 20조원 규모로 거대해졌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시장은 계속 커질 전망이다. 많이 버는 라이더의 성장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장의 중심에 서지 못한 적게 버는 라이더들을 위한 안전망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천장도 바닥도 없이 나날이 불균형해지는 지금의 배달 임금구조를 박 위원장 말대로 "라이더, 플랫폼, 정부가 둘러앉아 제대로 논의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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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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