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독단결정" "전권 위임받아"…의사 내분으로 번진 합의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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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현 젊은의사 비상대책위원장은 4일 대한의사협회(의협)가 더불어민주당·보건복지부와 합의문을 발표한 것과 관련 “합의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측과는 대화하는 자리를 가졌지만 그 어떤 것도 합의한 바 없었고, 정부와는 협상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는데 합의문이 나왔다는 것이다. 전공의들은 이런 합의 과정이 “폭력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앞으로 단체행동을 계속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4일 오후 3시 인스타 라이브로 입장 밝혀 #최대집 회장 "타결·결렬 결정은 재량"

전공의들 “배제된 채 협상”

박지현 위원장은 4일 오후 3시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에서 이날 의협이 정부·여당과 투트랙으로 협상한 뒤 도출한 합의문에 대해 합의 과정에서 전공의 등이 배제됐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박지현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이 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서울특별시의사회에서 열린 젊은의사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지현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이 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서울특별시의사회에서 열린 젊은의사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 위원장은 “젊은의사 비대위와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집행부, 전국전임의협의회,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은 전혀 얘기를 듣지 못했다”며 “최대집 의협 회장의 단독행동인지 의협 몇몇 이사와 얘기해 진행된 것인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정부와의 협상 테이블은 아예 만들어지지 않았고 근거도 있다”고 주장했다.

3일 범의료계 4대악 저지투쟁 특별위원회(범투위) 회의에서 의협이 제시한 초안에 대해 수정 의견이 나왔고 이를 반영해 최종안이 확정되면 이를 다시 공유하기로 했으나 이런 과정이 생략된 채 최대집 의협 회장이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 등은 철저히 배제됐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범투위에는 전공의, 전임의, 의과대학생으로 꾸려진 젊은의사 비대위와 의협 집행부 등이 들어가 있다.

박 위원장은 “범투위에서 최 회장에게 당·정 협상의 전권을 위임키로 의결했다”면서도 “하지만 범투위 내부적으로 최종 협상안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최종 협상안 공유 없이 최 회장이 협상을 진행했다는 얘기다. 박 위원장은 “우리가 제시한 협상문에는 ‘철회’가 들어가 있었다. 그 뜻이 ‘원점 재논의’와 같다고 한들 이제까지 주장해 온 명문화에는 미치지 못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만났지만 합의 없어, 절차 위반”

지난 3~4일의 협상 상황을 상세히 밝혔다.

젊은의사 비대위 측은 3일 밤 민주당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당 실무협상팀을 만나 대화를 했지만 어떤 합의도 없었다고 한다. 김진현 대전협 부회장은 “저희 의견을 전달하고 당은 당의 의견을 전달했다”며 “이후 모르는 사이에 합의가 돼버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종 협상안을 의협으로부터 받지 못한 채 민주당 측을 만나 다소 이견이 있어 이를 조율하기로 했고, 이후 4일 오전 4시쯤 민주당 측에서 수정된 안을 보내왔다고 한다. 그런데 핵심 내용 등이 빠져서 다시 문제를 제기했고, 재협상이 필요하다고 전달한 게 마지막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후 정부·여당 측과의 합의문 발표 소식을 오전 7시쯤 언론을 통해 접했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서연주 대전협 부회장은 “의료계가 당·정과 최종 합의할 때에도 최 회장과 박 위원장이 동시 서명하는 형태로 진행하기로 내부적으로 의결했지만, 전부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의료계 근본 문제 해결을 위해 20년간 목소리를 냈던 선배 의사들을 믿었지만 많은 의사 회원, 의협 내부 이사진까지 절망에 빠뜨리는 (최 회장의) 독단적 결정”이라고 꼬집었다.

서 부회장은 “최종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공유되지 않았고 독단적으로 (서명식 등을)진행하는 과정이 매우 폭력적”이라며 “합의점을 이루게 된 과정에 절차적 위배성이 있음을 밝힌다”고 재차 비판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이 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관련 서명을 위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을 기다리며 통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이 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관련 서명을 위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을 기다리며 통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단체행동 계획 향후 다시 발표”

전공의들은 이날 의협이 진료 복귀를 선언했지만 자신들의 단체행동 중단 여부에 대해선 “내부 의견 수렴을 거쳐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의협과 정부·여당의 합의문에는 의료계가 단체행동을 중단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수용할 수 없다고 밝힌 것이다. 이에 따라 21일부터 지속돼 온 집단 휴진(파업)이 계속 이어질 가능성도 남아 있다.

박 위원장은 “전공의들의 단체행동 중단 문제는 저희가 결정할 일”이라며 “전공의 대표들과 의견수렴을 거쳐 전공의 모두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대전협 공식입장을 조만간 발표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은 추후 대응 등을 정하기 위해 전공의 뜻을 모은 후 오는 7일 회의를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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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집 회장 “회장 독단행동 못해”

최대집 회장은 절차적 정당성을 거쳤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4일 오후 박능후 복지부 장관과의 합의문 서명식 뒤 기자들과 만나 “의협 구조는 회장이 독단행동을 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다”면서 “범투위 회의를 통했고, 혼자 임의로 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또 “정부·여당과의 합의문을 새벽 6~7시 e메일로 전달했다”며 “범투위 만장일치 의결 후엔 협상 전권을 의협이 위임 받는다. 타결과 결렬 결정은 제 재량에 놓인다. 이걸 누구한테 보여주고 승인 및 추인받는 절차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날 박지현 위원장은 3일 협상 과정상 문제점을 최 회장과 전화통화에서 직접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두 사람의 통화에서 최 회장은 “그러면 대전협은 원래 하던대로 하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은 것으로 확인됐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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