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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론만 늘어놓을거면 뭐하러…장기재정전망 무용론 자초한 정부

중앙일보

입력

“비현실적인 근거하에 무책임한 숫자를 던져 놓았다. 이런 식의 전망은 무의미하다.”(최원석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정부는 2060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최대 81.1%로 전망했다. 중앙포토.

정부는 2060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최대 81.1%로 전망했다. 중앙포토.

정부는 지난 2015년에 이어 지난 2일 5년 만에 장기재정전망을 내놨다. 법에 정해진 의무다. 국가재정법 7조는 ‘기획재정부 장관은 40회계연도 이상의 기간을 대상으로 5년마다 장기 재정전망을 실시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긴 흐름의 추세적 재정 위험 요인을 점검해 향후 나랏돈을 어떻게 운용해야 할지 살피자는 취지다. 정부의 이번 발표는 법 취지와 거리가 멀다. 위험 요인 점검·대응보단 장밋빛 포장에 치중한 모양새다. ‘무용론’까지 나오는 이유다.

[현장에서]

전문가들이 가장 의아해하는 지점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2040년대 중반 이후 내려갈 거라는 예상이다. 정부는 현재 상황 유지를 가정해 국가채무 비율이 2045년 최대 99%까지 올랐다가 2060년에는 81% 수준으로 떨어질 거라고 전망했다. 근거는 이렇다. “2040년대 후반 이후부터는 정부 지출이 줄어 채무 증가세가 GDP 증가 대비 적을 것.”(나주범 기재부 재정혁신국장)

왜 2040년 후반 이후부터 정부 지출이 갑자기 줄어드는 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없다. 현 정부 이후 복지 정책이 증가하며 정부가 손대기 어려운 의무 지출은 갈수록 늘어나는 구조다. 장기 전망대로라면 2040년 후반 이후 정부는 신성장 발굴, 연구‧개발(R&D) 등에 쓰일 예산을 확 줄여야 한다.

전망에 사용한 인구 추계에선 통계청이 제기한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를 뺐다. 통계청은 지난해 3월 발표한 장래인구 특별추계에서 고위‧중위‧저위 세 가지 경로를 발표했다. 장기전망에선 고위·중위 시나리오만 적용했다. 전년동월 대비 출생아 수가 올해 6월까지 55개월째 줄어드는 등 저출산 추세가 가파른 데도 그렇다.

2060년 GDP 대비 국가채무 전망. 박경민 기자

2060년 GDP 대비 국가채무 전망. 박경민 기자

성장률 가정도 낙관적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의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2.3%를 유지할 거라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자료를 바탕으로 전망을 제시했다. 향후 10년간 성장률이 지난해(2%)를 웃돈다는 얘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여파로 올해 역성장이 기정사실화한데다 성장 동력 자체가 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2.3% 성장률 유지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2021~2025년 잠재성장률은 2.1%, 2026~2030년 잠재성장률은 1.9%로 예상했다.

게다가 불리한 수치는 애써 드러내지 않았다. 정부가 제공한 자료에는 2045년 채무비율 99%라는 수치가 없다. 기자들의 요청에 뒤늦게 숫자를 공개했다. 2015년엔 자료에 담았던 국민연금과 사학연금 고갈 시기 역시 추후에 내놨다.

GDP 대비 국민연금 재정수지 전망.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GDP 대비 국민연금 재정수지 전망.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 8월 보고서에서 2015년 정부의 장기재정전망에 대해 “정부가 제시한 전망치는 잠재성장률 둔화로 인한 재정수입 악화, 복지제도 성숙,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장기 재정여건의 어려움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10년간 성장률이 지난해보다 높고, 인구는 덜 줄 거라는 현실과 먼 가정에 근거한 올해 전망도 이런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틀린 가정 아래에선 비현실적인 전망치가 나오기 마련이다. 무용론은 정부가 자초했다.

하남현 경제정책팀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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