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태주 "시무7조 잡스러웠다면 하교 쓰지도 않았다, 건강 빈다" [전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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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태주 시인 페이스북 [인터넷 캡처]

림태주 시인 페이스북 [인터넷 캡처]

진인 조은산의 '시무 7조'에 백성 1조로 맞섰던 시인 림태주가, 조은산의 재반박에 편지글로 화답했다.

림태주 시인은 31일 '진인 선생께 드리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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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 시인은 "사실 선생의 상소문이 그저 허름하고 잡스러운 글이었다면, 나는 ‘하교’ 따위의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상소문 형식 자체가 해학과 풍자가 담긴 새로움을 지녔고, 내용에 공감하는 이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리라 생각된다. 선생 글의 형식에 대구를 맞추느라 임금의 말투를 흉내 내었고, 교시하는 듯한 표현을 쓰기도 했다. 너그러이 이해해주리라 믿는다"며 "좌든 우든 상식과 교양의 바탕에서 견해를 나누고, 품위를 잃지 않는 논쟁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글의 말미에는 "코로나 시국에 건강하라"는 인사까지 덧붙였다.

시무7조를 일컬어 '삿되다', '졸렬하다' '혹세무민'라는 단어를 동원해 비판했던 '백성1조'와는 결이 다른 대응이었다.

앞서 진인 조은산 역시 '백성1조'에 답하는 반박을 하면서 "나는 피를 토하고 뇌수를 뿜는 심정으로 상소를 썼다. 정당성을 떠나 누군가의 자식이오 누군가의 부모인 그들을 개와 돼지와 붕어에 빗대어 지탄했고 나는 스스로 업보를 쌓아 주저 앉았다. 너는 내가 무엇을 걸고 상소를 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라고 강한 어조로 몰아세웠다.

그러면서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에게 부탁한다"며 "시인 림태주의 글과 나 같은 못 배운 자의 글은 비교할 것이 안 된다. 정치적 입장을 배제하고 글을 평가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림씨를 향해 "건네는 말을 이어받으며 경어를 쓰지 못했다. 내가 한참 연배가 낮다.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용서해 달라"며 글을 마무리했다.

진인 선생께 드리는 편지

깊은 태풍이 할퀴고 지나갔고, 지나간 자리에 젖은 세간들이 바깥으로 몰려 나왔습니다. 흙탕물을 씻어내고 눅눅한 물기를 말려도 예전 같지는 않겠지요. 제 자리에 있지 못하고 햇볕을 쬐러 밖으로 나온 살림이 안쓰럽듯이, 사람의 몸 밖으로 나온 문장도 길을 잃고 향기를 잃었을 때 안쓰럽기 그지없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글을 쓰고자 했으나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상처내는 글이 되었을 때의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선생처럼 나 또한 생계가 막중한 범부라 세세한 정치에 관심을 두고 살기가 어렵습니다. 무관심은 주권자로서의 무책임이라 늘 귀를 열어두고 있지만, 정치권도 민심도 극심한 대립과 분열로 치닫는 모습에 암담함을 느낍니다. 선생도 같은 심정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상소문의 형식을 빌려 그런 글을 썼으리라 짐작합니다.

격서 형식의 글에는 어쩔 수 없이 쓴 이의 이상이 담기게 마련입니다. 나는 정치의 품격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일개 범부가 꿈꾸는 이상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만은 정치를 둘러싼 권력 다툼이, 정치의 사무가 민생과 민의라는 근본에서 멀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민의도 품격 있게 표출되고 논의되기를 바랐습니다.

내 이름을 적시한 선생의 글을 읽고 몹시 기뻤습니다. 사실 선생의 상소문이 그저 허름하고 잡스러운 글이었다면, 나는 ‘하교’ 따위의 글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상소문 형식 자체가 해학과 풍자가 담긴 새로움을 지녔고, 내용에 공감하는 이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리라 생각됩니다. 선생 글의 형식에 대구를 맞추느라 임금의 말투를 흉내 내었고, 교시하는 듯한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주리라 믿습니다. 선생의 글이 그러했듯이 내 글도 무분별한 악성댓글에 시달렸습니다. 그 무분별에 대한 경계의 말을 선생의 독자들에게 남겨주어서 좋았습니다. 좌든 우든 상식과 교양의 바탕에서 견해를 나누고, 품위를 잃지 않는 논쟁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사람은 각자 자기가 선 자리에서 봅니다. 보이는 만큼 이해하고 보는 만큼 말합니다. 그래서 다른 자리에 선 사람의 시각과 말도 필요합니다. 세세하게 보고 말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멀찍이서 숲을 바라보며 말해주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그래야 온전해진다고 나는 믿습니다. 코로나가 재확산 되면서 절감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미워하고 싫어하는 저편의 사람이지만, 그가 안녕하고 무탈해야 내 건강과 안위가 보장된다는 역설입니다. 같이 살라는 코로나의 경고 앞에 겸허해집니다.

태풍이 오는 날, 숲에 들었습니다. 바람이 세찼고 상수리나무 군락이 일제히 흔들렸습니다. 그 속에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밑동이 썩어 죽은 나무였습니다. 나무들이 좌우로 흔들면서 내는 소리가 무수한 삶의 물음처럼 들렸습니다. 뻣뻣해진 나무는 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살아있는 한 경직되지 말아야겠습니다. 코로나 시국에 부디 건강 하시기를 빕니다.

덧) 이 글을 읽는 분들께
_하교 글은 내린 게 아니라 친구보기로 돌려 놓았습니다. 이유는 아시겠지요. 낯선 계정에서 몰려와 하도 막말과 쌍욕으로 도배를 해서 방치하기 어려웠습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이 글도 안 보이게 된다면 그런 연유일 것입니다.

이해준 기자 lee.ha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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