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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이 청약명당? 돈주고 위장전입 18명 무더기 당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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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해 수도권의 한 고시원에서 입주자로 이름을 올린 18명이 인근 아파트 분양을 신청해 무더기로 당첨되는 일이 있었다. 정부 합동 대응반의 조사 결과 이 고시원은 ‘청약 명소’가 아니라 ‘위장전입 명소’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고시원에 실제로 거주하지 않으면서도 업주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위장전입을 했다. 해당 지역에서 1년 이상 거주한 무주택자는 아파트 분양에서 우선공급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들 중 다섯 명을 부정청약으로 형사입건하고 나머지 13명에 대한 추가 수사를 진행 중이다.

정부, 9억 이상 부동산 거래 조사 #2만2000건 중 1705건 의심사례 #장애인단체가 특공 부정청약 알선 #가족간 3억 이상 싸게 거래 등 적발

아파트 부정 청약 불법 사례

아파트 부정 청약 불법 사례

국토교통부와 경찰청·금융감독원은 26일 부동산 실거래 조사 결과와 부동산 범죄 수사 결과를 합동 발표했다. 국토부 부동산시장 불법행위 대응반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2월까지 신고된 전국 9억원 이상 주택 거래 중 이상 거래로 의심되는 1705건을 조사했다. 거래 당사자에게서 금융거래 확인서와 자금조달 증빙자료 등을 제출받아 꼼꼼히 살폈다. 이 중 555건은 편법으로 증여했거나 법인자금 등을 빼돌린 탈세가 의심된다고 보고 국세청에 통보했다.

특히 가족 간에 시세보다 훨씬 싼 값에 거래한 것은 편법 증여가 의심된다고 봤다. 이번에 적발된 사례 중에는 언니가 소유했던 서울 용산의 아파트를 동생이 11억5000만원에 산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비슷한 아파트가 6개월 전에 14억8000만원에 거래된 사례가 있었다. 국토부 대응반은 이들 자매가 시세보다 3억원 이상 싸게 거래하면서 증여세 등을 빼돌렸을 수 있다고 봤다.

법인이 주주에게 지급하는 배당금을 과도하게 챙겨 아파트 매입에 쓴 사례도 있었다. A라는 법인 대표의 자녀 B씨(30)는 서울 송파구의 아파트를 13억5000만원에 샀다. 자금출처로는 법인 배당소득(7억5000만원)을 활용했다고 소명했다. 하지만 B씨가 보유한 법인의 지분은 0.03%에 불과했다. 국토부 대응반은 B씨의 보유지분에 비해 배당금이 지나치게 많다고 보고 편법 증여 의심 사례로 국세청에 넘겼다.

부동산 거래에서 대출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의심되는 37건은 금융위원회와 행정안전부에 통보했다. 이 중에선 법인 대출이나 사업자 대출을 받아 주택 구입에 쓴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비교적 많았다. 국토부는 부동산거래신고법을 위반한 사례도 211건을 적발했다. 주택 거래의 계약일을 허위로 신고했거나, 신고 기한을 넘긴 경우다. 국토부는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해 과태료를 부과하게 할 방침이다.

국토부 대응반은 부동산 관련 범죄 혐의가 있는 34명을 형사입건했다. 이 중에는 아파트를 분양할 때 장애인 등에게 특별공급하는 제도를 악용한 혐의를 받는 장애인단체 대표 C씨도 포함됐다. C씨는 브로커와 짜고 평소 알고 지내던 장애인과 국가유공자 13명의 이름을 빌려 아파트 분양에 당첨된 뒤 분양권을 되팔아 차익을 챙긴 혐의다.

업계에선 정부의 이번 조사·수사 결과 발표가 ‘부동산 감독기구’를 출범시키기 위한 포석이란 해석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부동산 대책의 실효성을 위해 부동산 시장 감독기구 설치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 2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올해 안에 부동산 감독기구 설치 근거 법안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언급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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