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中 체면 살려줬고, 중국은 고마워했다…문제는 앞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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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 국가안보실장이 22일 오후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양제츠 중국 중앙정치국 위원과 회담을 마친 후 해운대 해수욕장을 배경으로 기념촬영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22일 오후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양제츠 중국 중앙정치국 위원과 회담을 마친 후 해운대 해수욕장을 배경으로 기념촬영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국은 일단 중국의 체면을 살려줬고, 중국은 고마워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다.

중국, 시진핑 연내 방한은 확답 안 해 #"현 시점 양제츠 방한, 미·일은 불편할 것"

미·중 전략경쟁 속에 급박하게 이뤄진 중국의 외교수장 양제츠(杨洁篪) 중앙정치국 위원의 1박 2일 부산 방문에서 한·중 양국은 일단 절충점을 찾았다. 이례적인 장장 6시간의 회담을 통해서다.

청와대에서는 "회담은 성공적이었다. 중국이 한국을 절실하게 여긴다는 점을 확인한 자리"라고 평가했다. 중국 측도 "두 사람의 밝은 표정에 회담 결과가 반영됐다"는 반응이 나왔다.

중국은 이번 방문에서 미·중 전략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이 최소한 일본처럼 중국에 등을 돌리지 않기를 바랐다. 한·중 양국의 회담 결과 발표문을 보면 중국은 일단 나름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의 지난 22일 서면 브리핑에 따르면 양 위원은 최근 미·중 관계에 대한 현황과 중국 측 입장을 설명했다. 이에 "서훈 실장은 미·중간 공영과 우호 협력 관계가 동북아시아 및 세계 평화와 번영에 중요함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지난해 12월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지난해 12월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중국 측은 나아가 지난 22일 외교부 발표문에서 "양 위원은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문재인 대통령의 전략적 인도하에 중·한 관계가 양호한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표시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의 직·간접적인 압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중 압박 조치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미뤄왔다. ^미국 주도의 경제번영네트워크(EPN) 참여 ^화웨이 제재 동참 ^중거리 미사일 한반도 배치 ^홍콩과 대만 등 '하나의 중국' 관련 이슈 등이 그것이다.

중국 측이 '중·한 관계가 양호한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표현을 쓴 것은 한국의 기존 입장에 당분간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단 중국엔 현상 유지가 나쁘지 않은 결과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은 "중국 측 반응으로 볼 때 양 위원이 서실장으로부터 '한국이 적어도 중국을 적으로 돌리지는 않겠다'는 메시지는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중국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다즈강(笪誌剛) 헤이룽장성 사회과학원 동북아연구소장은 "양 위원의 방한에서 한국이 중국 관련 이슈에서 일본과 달리 객관적인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해 중국이 고마워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왼쪽)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왼쪽)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로이터=연합뉴스]

한국이 '현상 유지'를 통해 중국의 체면을 살려줬지만 역시 '현상 유지'라는 점에서 중국은 당장 한국에 '시 주석 연내 방한'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진 않았다.

청와대는 브리핑에서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돼 여건이 갖춰지는 대로 시 주석의 방한을 조기에 성사시키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청와대가 그동안 강하게 희망해온 '연내'라는 표현은 빠졌고, 코로나19 상황이 언제 안정될 지는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 측 발표문에는 아예 시 주석 방한에 대한 언급이 빠졌다. "중국은 한국과 공동으로 노력해 고위층 교류와 전략적 소통을 강화한다"고만 돼 있다. 향후 한국의 태도에 따라 시 주석의 방한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일종의 '조건부'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다만, 중국은 복수의 소식통들에 따르면 청와대가 "한국이 시 주석이 우선적으로 방문할 나라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발표하는 것을 용인했다고 한다. 분위기가 나쁘진 않다는 의미다.

청와대는 브리핑에서 양측은 한국이 의장국인 한·중·일 정상회의 연내 개최(12월 예정) 필요성에 대해 협의했고,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방한이 이뤄지면 한·중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 총리 연내 방한이 시 주석 방한 불발에 따른 일종의 '플랜 B'가 될 수도 있다.

한·중 양국은 일단 절충점을 찾았지만 이런 움직임에 대해 미국은 불편할 수 밖에 없다.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이 시점에 양 위원의 방한을 바라보는 미국과 일본의 시각은 곱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은 여전히 미국에 확고한 동맹으로서 신뢰를 받기 어려운 나라라는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서울=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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