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코노미스트] 심장병 잡는 ‘절대반지’ 개발한 전자공학자

중앙일보

입력

“2021년 미 의회 도서관 78개 분량 데이터 매달 축적, 환자 의료정보 담은 플랫폼 진화할 것”

[김유경 기자의 Who’s next | 이병환 스카이랩스 대표]

이병환 스카이랩스 대표는 ’반지형 심장 모니터링 기기를 통해 환자들의 병원 밖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사진:김현동 기자

이병환 스카이랩스 대표는 ’반지형 심장 모니터링 기기를 통해 환자들의 병원 밖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사진:김현동 기자

국내 스타트업 스카이랩스가 내놓은 심장 모니터링 기기 ‘카트’가 관심을 끌고 있다. 반지처럼 손가락에 끼우는 웨어러블 모니터링 기기로 한 번 충전에 최장 48시간 작동해 잠들지 않는 중추기관 심장을 감시한다. 임상연구 결과 심방세동탐지 정확도가 99%에 달했다. 카트는 유럽에서 의료기가 품목 허가를 받았고, 미국 진출을 준비하는 등 해외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창업자 이병환 대표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전자공학 석사 학위를 받고 삼성전자에서 신호처리 기술연구원으로 일했다. 이 대표는 “제아무리 정확도가 99%여도 병원 밖에서 모니터링과 데이터를 수집해야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며 “비대면 진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통신 전문가가 왜 의료 스타트업을 차렸나.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심장에 문제가 생겨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다. 그때부터 헬스케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창업에 나서며 모빌리티와 헬스케어를 두고 저울질했다. 모빌리티는 큰 자본이 필요하고 대기업에 종속될 가능성이 큰데 비해 헬스케어는 스타트업이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는 분야라고 판단했다.”

의료는 정부의 규제를 받는 관치 산업 아닌가.

“애초에 국내보다는 해외 시장을 염두에 뒀다. 헬스케어는 의사들을 상대로 벌이는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데이터 등의 근거를 바탕으로 사업 모델을 만들 수밖에 없다. 근거는 만들기 어렵지만, 한 번 만들면 우선권이 주어진다. 들어가긴 어려운데 들어가고 나면 진입 장벽이 쌓인다.”

어느 병원과 파트너십을 체결했나.

“국내에서는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삼성서울병원 등과 손잡았고, 해외에선 영국 옥스포드병원·네덜란드 UMC 병원·독일 샤리떼 병원 등과 함께 하고 있다. 창업 초기 독일 바이엘로부터 투자를 받았기 때문에 유럽 허가를 받았고, 네트워크도 다양하다. 미국은 FDA(식품의약국) 승인을 준비 중이며 내년 진출할 계획이다.”

미국은 이미 진단기기 시장이 포화 상태 아닌가.

“반지형 심장 모니터링 기기는 흔치 않은 제품이다. 병원에서 쓰는 의료기기는 관심 사항이 아니다. 병원 밖에서 만성질환자가 지속해서 관리, 치료할 수 있는 의료기기와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 이런 제품·서비스를 만드는 회사 중에 비교하거나 경쟁할 만한 곳은 없다. 애플워치는 의료기기로는 단점이 있다.”

영국·네덜란드·독일 시작해 미국 시장으로 확장

암·당뇨 등 다른 진단기기 플랫폼 회사들과 경쟁해야 하지 않나.

“만성질환을 다룰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데이터다. 고혈압 진단을 내릴 때 혈압을 여러 차례 측정하는데, 각각의 측정값이 모두 의미가 있다. 고혈압 환자는 병원 밖에서도 꾸준한 관리와 데이터 수집이 필요하다. 이런 필요를 해결해줄 도구와 솔루션을 만들고 있으며, 이런 서비스 회사는 많지 않다.”

어떤 요소가 헬스케어 플랫폼의 경쟁력을 좌우하나.

“플랫폼의 자산은 데이터이며, 모든 데이터는 환자로부터 나온다. 이 데이터를 가져오는 방법은 의료기기다. 수십 년 전부터 의료플랫폼 이야기가 나왔지만, 이전에는 데이터를 모으는 수단이 없었다. 스카이랩스의 의료기기는 신체 데이터 끝단까지 모든 데이터를 수집한다.”

제품을 반지형으로 제작한 이유가 있나.

“몸에 패치를 붙이는 등의 번거로움 없이 24시간 심장을 모니터링 할 수 있다. 스마트워치의 형태도 있는데, 생체 신호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산소포화도 등을 포착할 수 있는 손가락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반지형은 소지와 사용이 편하며 잘 때도 착용할 수 있고, 데이터의 정확도가 높다.”

다른 의료진단기기를 출시할 계획이 있나.

“하드웨어의 다양성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손목시계 형태로 개발했다면 편했겠지만, 신호의 품질과 정확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어려운 길을 택했다. 반지형 의료기기는 세계 최초다. 환자의 질병을 쉽고 효과적으로 치료·관리할 수 있는 방식이다.”

현재 누적된 데이터는 있나.

“기존 임상 데이터가 있고, 사용자 데이터는 앞으로 사용자가 늘어남에 따라 데이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이다. 환자 한 명이 1년에 1기가바이트의 데이터를 생산한다. 현재 목표 판매량을 달성하면 2021년에는 1.2페타바이트(1페타=1024테라)의 데이터가 쌓인다. 4K(UHD급 화질) 영화 1만3200편, 미 의회 도서관 78개 분량이다. 데이터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다.”

비즈니스모델은 무엇인가.

“의료기기 판매와 구독 서비스다. 구독 서비스는 환자의 데이터를 분석해 준다. 또 IT(정보기술) 기기를 다루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노년층을 대신해 환자 데이터를 바쁜 의료진에 전달해주는 대행 서비스도 한다.”

이런 원격의료 서비스를 의료계는 반대하지 않나.

“아마 원격 모니터링 서비스를 반대하는 의사는 없을 거다. 만성질환의 경우 병원 안에서 볼 수 있는 데이터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의사가 병원 밖 데이터를 확보하면 환자를 보기 편할 것이다. 부정맥학회의 경우 보건보건복지부에 원격 모니터링 규제를 풀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고, 올 초에 복지부가 이에 대한 유권 해석을 내려 쓸 수 있게 됐다.”

“질병 예방·관리로 사회적 가치 창출”

의사 출신이 아닌데, 병원과 신뢰 구축은 어떻게.

“임상시험 결과를 얻기 위해선 병원과 함께 일할 수밖에 없다. 이 결과가 나오면 의사들로부터 연구·협력 제안이 먼저 들어온다. 회사에서 어렵거나 잘 안 풀리는 프로젝트를 소방관처럼 전담했고, 모두 성공시켰다. 기술력이 있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뭔가 시작하는 데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경험이란 자산이 쌓였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의료 규제 개혁과 관련해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나.

“의료와 관련한 규제를 푸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 거꾸로 환자나 의료진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규제의 틀 안에서 효용성 있고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의 논의가 벌어져야 한다고 본다. 일단 원격의료의 경우 코로나19 사태 이후 규제가 자연스럽게 풀려가는 것 같다.”

카트가 어떤 제품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나.

“충분히 시장성이 있고 평소에 환자 건강을 관리할 수 있다는 면에서 사회적 가치도 창출한다. 환자에게 의미 있게 활용되고 질병 예방 및 관리에 기여하길 바란다. 의료진의 수고도 덜어줬으면 한다. 의료기기는 개발에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투자를 꺼리는 경우도 있는데, 중장기적으로 보면 충분히 진입 가치가 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