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그 영화 이 장면

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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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2016년 ‘부산행’과 ‘서울역’에 이어 2020년 ‘반도’까지, 연상호 감독의 좀비 영화들엔 항상 등장하는 스펙터클이 있다. 재난과 폐허의 서울 풍경이다. 멀리서 부감 숏으로 담아낸 이 장면들엔 감독 특유의 종말론적 감성이 있다. 성서의 묵시록이 실현된 듯한, 이미 지옥으로 변해 버린, 대재난 속에서 그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는 거대 도시. 게다가 ‘반도’의 그곳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으며, 생명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반도’의 이 비주얼이 인상적인 건, 코로나 시대에 의도하지 않게 획득한 현실성 때문이다. ‘부산행’이나 ‘서울역’ 때만 해도 재난 장르에서 흔히 사용되는 클리셰처럼 건물이 불타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도시 전경을 보여주었다면 ‘반도’는 다르다. 4년 동안 방치된 서울은 어디에 좀비가 숨어 있는지 알 수 없고 생존을 위해선 그들을 피해야 하는 위험한 공간이다.

영화 〈반도〉

영화 〈반도〉

이것은 팬데믹의 상황과 겹친다. 감염자가 좀비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피하기 위해, 접촉을 최소화하고, 일상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결국 도시의 활기를 잃어가는 시대. 가상의 남한을 배경으로 한 영화지만, ‘반도’는 우연히 현실을 담아내게 되었고, 연상호 감독은 ‘좀비의 선지자’가 되어 예언을 한 셈이다. 그렇다면 구원의 희망은 있는 걸까? 영화에선 가능했겠지만, 현실에선 쉽지 않아 보인다. 언제나 현실이 더 가혹한 법이니까.

김형석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