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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건보 재정통합 연연하지 말라

중앙일보

입력

보건복지부가 내년 1월로 예정된 직장.지역 건강보험 재정 통합과 관련해 통합은 하되 장부상 재정 관리를 구분 계리(計理)키로 함으로써 사실상 재정 통합을 연기했다.

법적으론 재정 통합을 하더라도 장부상 재정 관리를 따로 하고 보험료도 별도로 부과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직장 건강보험 가입자의 소득은 유리알처럼 드러나 있는 반면 지역 건보 가입자의 소득 파악률이 28%선에 불과한 현실 등을 들어 재정 통합의 연기를 누차 촉구해 왔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이같은 재정 구분 계리 방침을 환영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직장 가입자는 총 보수를, 지역 가입자는 소득.재산.연령.가족수 및 자동차 보유 대수 등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하는 데다 지역의 경우 정부가 50%를, 직장은 사용자가 50%를 지원하는 등 지원 기준도 달라 재정 운영을 구분해 할 수밖에 없다" 고 밝히고 있다.

직장과 지역 구분이 없어진다면 보험료를 똑같이 올려야 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충분히 수긍이 가는 설명이다.

그러나 재정 통합 문제에 대한 그동안의 정부 태도는 당당하지 못했다. 지난달 말 건강보험 재정 안정 종합대책을 마련하면서 직장.지역 구분 계리 입장을 정했으면서도 이를 적극 알리지 않았다.

그래서 재정 통합을 둘러싼 찬반 의견이 팽팽하자 슬그머니 넘어가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 구분 계리 방식 역시 양쪽 입장을 절충한 것이어서 눈가림식 처방이란 비판도 나오고 있다.

더구나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은 '2001년 12월 31일까지 직장 가입자와 지역 가입자의 재정(공단의 관리.운영에 필요한 재정은 제외한다)을 각각 구분하여 계리한다' 고 규정하고 있다(부칙 제10조).

이는 곧 내년부터는 구분 계리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법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건강보험 재정만 구분 계리할 경우 위법성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직장과 지역 건보 재정을 통합키로 한 본래의 취지는 소득과 부담 능력에 따라 보험료를 물리도록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복지부는 직장이든 지역이든 올해 얼마를 지출했으며, 내년엔 얼마를 쓸 것인지를 기준으로 보험료 인상률을 따로 정하도록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보험료 부과 기준이 다른 데다 지역 건보에만 국고가 지원되기 때문에 건강보험 건전 재정 목표 연도인 2006년 이후에도 이같은 분리 운영 체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마디로 재정 통합의 명분은 온데간데 없고 빈 껍데기만 남게 된 셈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지역과 직장이 함께 재정을 '풀' 로 쓴다는 점에서 내년부터 재정 통합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궁색한 논리를 펴고 있다.

정부는 명분에 얽매여 건보 재정 통합에 연연할 게 아니라 이제라도 직장.지역 건보를 동시에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직장.지역 건보 재정의 구분 계리를 법률로 뒷받침할 수 있도록 국민건강보험법도 개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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