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가슴에 묻은 장남’이 해리스를 이어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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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오른쪽)이 보 바이든과 함께 찍은 사진. 해리스 상원의원이 2015년 5월 자신의 SNS에 올렸다. [인스타그램 캡처]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오른쪽)이 보 바이든과 함께 찍은 사진. 해리스 상원의원이 2015년 5월 자신의 SNS에 올렸다. [인스타그램 캡처]

조 바이든(78)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러닝메이트를 고를 때 카멀라 해리스(56) 상원의원은 늘 선두주자로 거론됐다. 하지만 정작 바이든 캠프 내 정치 자문단과 가족들은 그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지난해 6월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해리스가 바이든을 공격한 데 대한 서운한 마음이 여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바이든이 결국 해리스를 선택한 데는 2015년 숨진 장남 보 바이든과 해리스의 우정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CNN이 최근 전했다. 숨진 보가 아버지 바이든과 해리스의 인연을 만들어준 셈이다.

2015년 뇌암으로 떠난 보 바이든 #해리스, 주법무장관 하며 친분 #부통령 후보면접 때도 인연 어필 #바이든 “아들과 인연이 중요 작용”

CNN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해리스가 부통령 선정위원회와의 면접에서 보와의 인연을 적극 밝히면서 바이든을 공략했다고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뇌암으로 세상을 먼저 떠난 장남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던 바이든에게 ‘보의 친구 카멀라’ 전략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바이든이 면접을 본 11명의 후보자 가운데 개인적인 스토리를 잘 풀어낸 해리스가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고  뉴욕타임스도 전했다.

바이든은 해리스를 부통령 후보에 지명한 뒤 12일(현지시간) 연 첫 공동회견에서 “카멀라가 누구인지 아들 보를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델라웨어주 법무장관이었던 보 바이든은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으로 있던 해리스와 업무로 친분을 쌓았다. 두 사람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거대 은행의 책임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뜻이 통했다고 한다. 해리스는 “하루에도 몇 번씩 통화하던 사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올 6월 장남 보 바이든의 추모예배에 참석해서 눈물을 닦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올 6월 장남 보 바이든의 추모예배에 참석해서 눈물을 닦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보 바이든은 2015년 5월 46세 때 세상을 떠났다. 당시는 부통령인 아버지 바이든의 뒤를 이을 정치 후계자로 주목받던 때였다. 장남의 사망 충격으로 그해 10월 바이든은 2016년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4년 뒤인 올해 대선에 도전한 바이든은 당내 경선에서 해리스와 맞닥뜨렸다. 해리스는 지난해 6월 첫 TV 토론에서 인종차별 성향의 공화당 의원들과의 추억을 회고하는 바이든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바이든이 그들과 함께 흑백 학생을 버스에 같이 태워 등교시키는 정책인 버싱(busing)에 반대한 점을 지적하면서 “캘리포니아에서 버스를 타고 등교하던 흑인 소녀가 있었다. 그게 바로 나”라고 비판했다. 이를 계기로 해리스는 경선 초반 이름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 캠프 내 불화와 자금난 등으로 지난해 12월 경선을 포기하고 바이든 지지를 선언했다.

이후 해리스는 바이든 지지 연설을 하면서 보와의 인연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바이든이 아들을 잃은 상황을 설명하면서 바이든이 상실을 경험했고 공감 능력이 있는 지도자라는 점을 부각했다. 바이든은 12일 공동회견에서 해리스를 부통령 후보로 소개하면서 “나는 보가 카멀라와 그가 하는 일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알았다”며 “솔직히 이 점이 내가 이번 결정을 내릴 때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공개했다. 이어 “내게 선거 캠페인은 언제나 가족의 일이었다”고 말했다.

해리스는 지난해 경선에서 사퇴한 뒤 실패를 복기하며 절치부심했다고 한다.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던 세력을 적극적으로 접촉했고,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델라웨어) 등 바이든 최측근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고 USA투데이가 전했다. 바이든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짐 클라이번 하원의원(사우스 캐롤라이나) 등 거물 흑인 정치인들도 설득해 이들이 바이든에게 해리스를 선택하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얘기도 미국 언론에서 나온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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