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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월세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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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애란
한애란 기자 중앙일보 앤츠랩 팀장
한애란 금융기획팀장

한애란 금융기획팀장

신혼집이 월세였다. 보증금 4000만원에 월세 100만원. 정확히는 2년 치 월세를 미리 내는 ‘통월세’(깔세)였다.

상태 좋은 새 아파트여서 마음에 들었는데, 집주인이 통월세 방식을 고집했다. 전세금 1억8000만원 중 1억4000만원을 월세 100만원으로 전환하는 조건이었다. 전월세 전환율 8.6%였다. 당연히 집주인엔 좋은 조건이었다. 당시 정기예금(6%대 초반)보다 이율이 높았다. 매달 월세가 제때 들어오는지 신경 쓸 필요 없으니 편했다.

세입자로서도 나쁘지 않았다. 선납인 대신 시장가보다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땐 ‘보증금 1억원=월세 100만원’이 공식이었다. 한국감정원 통계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만 6년 넘게 전국 평균 월세이율은 월 1%(연 12%)였다. 연 8.6%이면 그보다 낮을 뿐 아니라 당시 8%대였던 은행 전세자금대출 금리와도 차이가 없었다.

무엇보다 모아둔 돈은 없지만 근로소득은 있는 맞벌이 신혼부부였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월 100만원이면 부담되긴 해도 둘이 버니까 살림이 쪼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임대차 3법 통과 뒤 ‘월세 시대로의 전환’이 다시 화두다. 전세 소멸로 월세 전환이 가속화하면 주거비 부담이 치솟을 거란 우려가 크다. 동시에 전세야말로 집값 상승의 주범이고 월세는 나쁜 게 아니라는 ‘월세 옹호론’도 등장했다.

경험에 비춰볼 때 월세도 임대인과 임차인의 윈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누가 다시 월세로 살겠느냐고 물어본다면 못 산다고 답하겠다. 지금 당장의 주거비 부담 때문만은 아니다. 은퇴 뒤가 걱정돼서다.

월세를 감당하려면 따박따박 들어오는 소득이 받쳐줘야 한다. 월세를 내지 못하면 살던 집에서 내쫓긴다. 임대차 3법에서도 임대료 체납은 계약갱신 거절 사유다. 국민연금에 20년 넘게 가입한 수급자들이 받는 연금도 월평균 93만원이다. 몇십만원의 월세도 은퇴생활자엔 너무 큰 부담이다.

어떤 국회의원 말처럼 ‘누구나 월세 사는 시대’가 정말 올까. 그렇다면 정부는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은퇴생활자들이 살던 월셋집에서 내쫓기지 않게 도울 방법을. 마침 미국에서는 ‘코로나발 월세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선진국형 임대차 제도의 한 단면이다.

한애란 금융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