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걸의 의학 프리즘] 선탠

중앙일보

입력

날씨가 무더워지기 시작한 이맘때쯤 여성들이 가장 낭패를 보기 쉬운 질환이 바로 기미다.

맨살을 햇볕에 노출하는 등 잠시 방심하면 이내 얼굴에 거무죽죽한 불청객이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기미는 얼굴에 생기는 피부질환 가운데 가장 치료하기 어려운 질환 중 하나다. 약을 열심히 발라도 효과가 신통치 않고 요즘 유행하는 레이저치료를 받아도 조금 좋아졌다 마는 정도다.

첨단의학시대지만 기미를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안은 햇볕을 피하는 것이다.

햇볕의 자외선은 피부의 건강에 백해무익하기 때문이다. 기미뿐 아니라 점이나 잡티.주근깨는 물론 심지어 주름살도 자외선 때문에 발생한다.

문제는 햇볕이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긍정적인 이미지다.

일광욕으로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는 건강의 상징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여름에 피부를 잘 그을리면 그해 겨울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며 일광욕을 장려하는 사람도 있다.

피부 아래에서 햇볕에 의해 비타민D가 합성되기 때문이란 그럴듯한 이유도 있다. 그러나 현대인은 평소 식품을 통해 충분한 비타민D를 섭취하고 있으므로 굳이 피부를 햇볕에 내놓을 이유가 없다.

일광욕은 의학적 필요가 아닌 문화적 산물이다. 20세기 초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이 파리 사교계에 햇볕에 그을린 피부를 처음 선보이면서부터 전세계적인 유행을 불러 일으켰다.

실내 선탠은 괜찮다는 것도 잘못이다. 최근 미국 존스홉킨스의대에선 실내 선탠도 햇볕과 마찬가지로 피부노화와 손상, 나아가 피부암까지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태양 아래 일광욕을 즐기는 서구인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 때문에 해마다 미국에서만 1백만명의 피부암 환자가 발생해 암 발생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광욕이야말로 지구촌 최대의 건강 미신인 셈이다. 햇볕 자체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문제는 자외선이다. 과도한 일광욕을 피하고 외출할 땐 자외선 차단크림을 반드시 바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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