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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입어도, 못 입어도 평가…女정치인 '패션정치' 숨은 꼼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원피스를 입고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잠시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원피스를 입고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잠시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빨간 원피스를 입고 국회 본회의장에 출석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을 둘러싼 입길이 거세다. 비난이 도를 넘자 같은 당 조혜민 대변인은 “의정 활동에 대한 평가가 아닌 여성 정치인의 외모, 이미지를 평가해 정치인으로서 ‘자격 없음’을 말하려고 하는 행태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패션 정치' 공세…"흠집 의도" 

전문가들은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남자 정치인은 능력, 여자 정치인은 외모’로 평가하려는 사회 분위기가 이어져 왔다고 지적한다. 여성 정치인을 따라다녔던 '패션 정치'란 용어가 대표적이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은 “여성은 단지 입고 싶은 옷을 입었을 뿐인데 여기 큰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 모든 걸 외향적으로 평가하려는 것”이라며 “여성은 입법이나 국정감사 질의를 통해 무언가를 바꾸려는 것이지 오늘 입은 옷으로 말하려는 게 아니다. 기득권 세력이 패션 정치 용어를 사용하는 건 결국 여성 정치력을 흠집 내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패션 정치라는 말은 유독 여성 정치인을 중심으로 확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킷의 깃을 세워 등장했을 땐 ‘전투복 패션’이란 얘기가 나왔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튀는 색깔의 옷을 입고 나오자 ‘강효리(강금실+이효리)’란 별명이 붙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블라우스와 바지 정장, 재킷을 주로 입는 것을 보며 강인하고 냉철한 ‘추다르크’다운 의상이란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해외 순방기간 중 인도·스위스에서 패션.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해외 순방기간 중 인도·스위스에서 패션. [청와대사진기자단]

패션을 둘러싼 화제가 여성 정치인의 정치력보다 외적인 모습을 부각하는 결과로 돌아오곤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해외 순방 때마다 ‘패션 외교’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외교 성과보다 당시 착용한 브로치와 가방, 옷 브랜드가 연일 화제 됐다. 강 전 장관이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유력 후보로 거론되자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강 전 장관에 대한 지지도 조사는 탤런트 인기투표에 불과하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해외도 마찬가지

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 연합뉴스

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 연합뉴스

여성 정치인의 외적인 모습에 언론과 사회가 과도하게 주목하는 건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최장수 총리로 등극했지만, 패션 테러리스트로 불리며 ‘유머 감각 없는, 촌스런 동독 여자’란 비난을 받았다. 반면 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는 패셔니스타로 화제가 됐지만, 복장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다는 이유로 눈총을 받기도 했다. 영국 유력지 가디언과 CNN 방송 등은 “영국 미디어가 30년 경력의 베테랑 정치인의 능력보다 패션 취향에만 관심을 가진다”고 꼬집었다.

여성 정치인의 능력이 아닌 옷에 과도한 관심이 쏟아지자 미국의 한 여성복 브랜드는 여성 정치인에게 무료로 옷을 대여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하기도 했다. 해당 브랜드 측은 "여성 정치인이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과 돈을 절약해주겠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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