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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닫힌 생태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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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동현
이동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최근 개봉한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은 평화협정을 위해 모인 한국·미국·북한 정상이 북한 군부 쿠데타 세력에 납치돼 핵잠수함에 갇힌 상황을 그린다.

‘북미 정상회담을 왜 원산에서 하느냐’ ‘미국 대통령이 저렇게 쉽게 납치될 리 있느냐’는 반응부터 ‘우리나라 대통령이 저렇게 잘 생길 리 없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반응도 있지만, 분단 상황과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움직임을 그린 점은 흥미롭다.

‘강철비2’의 제작비는 154억원인데 그중 절반이 잠수함 전투 신의 컴퓨터그래픽(CG)에 사용됐다. 고증도 훌륭하다.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가 소노부이(sonobuoy·잠수함 탐지용 부표)를 투하하고, 핵잠수함이 폭뢰를 회피하기 위해 기동하는 모습은 박진감이 넘친다.

잠수함은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공간이다. 볼프강 페터젠의 ‘특전 유보트’(1981)나 할리우드의 ‘붉은 10월’(1990), ‘크림슨 타이드’(1995) 같은 영화들은 명작으로 꼽힌다. 한국에서도 ‘강철비2’ 이전에 ‘유령’(1999)이란 영화가 제법 흥행에 성공했다. 봉준호 감독이 시나리오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당시로선 허술한 CG, 일본 만화 ‘침묵의 함대’(1988~1996)에서 따온 듯한 설정이 비판받기도 했다.

명작으로 꼽힌 잠수함 영화들은 잠수함이라는 특수한 폐쇄공간에서 구성원 간의 갈등과 심리를 잘 묘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강철비2’ 역시 대립 구도를 그리지만 미묘한 심리 묘사라기보다 이분법적 대립에 가깝다. 명작 잠수함 영화로 꼽기엔 아쉬운 이유다.

너무 앞서간 상상인지 몰라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창궐하는 세계가 잠수함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과 물자가 자유롭게 이동하던 세계는 대항해 시대 이전처럼 폐쇄적인 세계로 바뀌었고, 닫힌 세계 안의 사람, 서로 다른 세계의 사람 사이에 끊임없이 갈등이 표출된다.

잠수함은 ‘닫힌 생태계’다. 외부와의 교류가 없다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 내부 구성원이 갈등을 빚으면 파국은 더 빨리 찾아온다. 코로나19의 세계가 ‘닫힌 생태계’가 돼선 안 되는 이유다. 서로 타협하고 공통의 이해를 찾아야 파국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현 산업1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