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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기상청 체육대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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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애란
한애란 기자 중앙일보 앤츠랩 팀장
한애란 금융기획팀장

한애란 금융기획팀장

교육 기자가 기상청을 담당했던 시절이 있다. 과거 기상청 본청이 서울시교육청 근처였다는 이유였다. 기상청이 1998년 서울 신대방동으로 이전한 뒤에도 한동안 그랬다. 교육청 기자실 팩스로 들어온 예보 자료로 날씨 기사를 썼던 오래전 얘기다.

그 시절, 기상청을 출입하며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기상청 체육대회에도 비가 왔었대.” ‘설마, 누가 지어낸 말이겠지’라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나 해 기상청 관계자에 물어봤다. 난처한 표정과 함께 돌아온 답은 예상과 달랐다. “그런 적이 있긴 한데, 오래전 일이에요.”

그랬다. 그런 적이 있긴 있었다. 찾아보니 1994년 5월 3일 기상청 봄철 체육대회 날 오후에 비가 와서 기사까지 나왔다. 한 달 전 미리 날짜를 잡아서 생긴 일이라고 했다.

2020년 여름. 장마 예보가 번번이 빗나간 기상청을 질타하는 여러 기사에서 바로 그 ‘기상청 체육대회’ 이야기가 다시 등장한다. 기상청의 예보 능력을 비꼬는 우스갯소리쯤으로 취급된다. 더 세고 강한 표현도 많다. 중계청, 오보청에 구라청까지….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기관의 예측 실패는 당연히 비판받을 일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달린 중요한 업무라서 더 그렇다. 동시에 수십 년 이어진 이런 비판이 기상청에는 아프지만 결국 약이 됐으리라 본다. 기상청이 520억 원짜리 슈퍼컴퓨터 5호기를 보유하고, 10년간 1000억원을 들여 구축한 한국형 수치예보모델을 도입하게 된 건 예보 정확도에 대한 관심과 지적의 결과일 것이다.

다만 비판은 자극제가 돼야지 움츠러들게 하면 곤란하다. 2005년 기상청이 ‘동네 예보’를 도입한다고 발표했을 때 내부에서 걱정이 컸다. 지역을 세분화해 예보하면 더 많이 틀릴 게 뻔해서다. 아니나 다를까, 2008년 본격 시행한 동네예보는 오보청 오명에 한몫했다. 하지만 솔직히 수요자로는 ‘서울 지역 곳에 따라 오후 한때 비’보다는 ‘순화동 9~12시 비’ 예보가 훨씬 더 나은 서비스다.

전 세계적 이상기후 현상으로 날씨 예측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기상청 국감 단골 메뉴인 예보관의 처우 개선과 역량 강화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정확한 예보를 위해 기상청이 더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많다. 역대급 장마가 기상청에 숙제를 쏟아부었다.

한애란 금융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