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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힘은 더 빼고, 경찰 힘 더 키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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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30일 검찰과 국가정보원의 권한을 축소하는 내용의 권력기관 개편 방향을 밝혔다. 검찰 수사 대상은 공직자의 직급, 범죄 액수 등을 기준으로 대폭 줄이기로 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정·청 협의회에 참석해 “20대 국회에서 ‘미완의 과제’로 남은 권력기관 개혁을 다시 시작한다”며 “대통령령을 개정해 검찰의 1차 직접수사 범위를 필요한 분야로만 한정하고, 검경 관계를 지휘관계에서 협력관계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당정청, 권력기관 개편안 발표 #검찰, 6개 분야 범죄만 직접 수사 #국가·자치경찰 두되 조직 일원화 #“정권에 순응하는 검찰 만드나” #검찰, 뇌물 3000만원 이상만 수사

새로운 법령이 만들어지면 올해 1월 제정돼 지난 15일부터 시행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에 따라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 된 대통령과 국회의원, 장차관과 판검사 등의 고위 공직자에 대한 검찰 수사는 원천적으로 차단될 전망이다. 공수처법을 만들면서 도입한 수사 이첩 규정에 더해 검찰의 수사 대상 자체에도 제한을 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정·청은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는 6개 분야로 특정하기로 했다.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협의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마약 수출입 문제를 경제 범죄의 하나로, 주요 정보통신기관 사이버 범죄를 대형참사 범죄 중 하나로 포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금처럼 마약·사이버 관련 1차 수사는 검찰이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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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권한이 대폭 축소되는 분야는 부패·공직자 범죄다. 조 의장은 “범죄 주체인 주요 공직자 신분과 일부 경제범죄에 대한 금액 기준을 법무부령에 둬 수사 대상을 재차 제한한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조남관 법무부 검찰국장은 “부패·공직자 범죄 주체 신분은 공직자 재산등록 신고 대상 공직자, 원칙적으로 4급 이상을 (검찰 수사) 대상으로 한다”며 “금액 기준은 부패범죄의 경우 뇌물액수 3000만원 이상을, 경제범죄는 사기·배임 피해액 5억원 이상인 경우에만 검찰 직접수사가 가능하도록 (대상을) 축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차관급에 해당하는 국회의원과 3급 이상(중앙부처 국·과장급) 주요 공무원은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어서 검찰의 수사는 사실상 4급 공직자에 한정되는 셈이다. 민주당 법사위 소속의 한 의원은 “검찰이나 경찰이 특정 기업을 조사하다가 그에 연루된 정치인이 나올 수 있다. 만약 현직 국회의원이 나오면 그 사안은 바로 공수처로 넘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일선 검찰에서는 “5급 이하는 경찰이, 3급 이상은 공수처가 수사하면 검찰은 4급 공무원만 수사하라는 것이냐”는 불만이 제기된다. 3000만원 이상(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 5억원 이상(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배임죄)의 ‘금액 기준’에 미달한 사건은 수사할 수 없게 되는 것에도 검찰 내부에서는 반발의 목소리가 나온다.

3급 이상 공직자는 공수처, 5급 이하는 경찰 … “검찰은 4급만 수사하나”

당·정·청의 개혁 방향은 수사 현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게 수사 실무자들의 주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특수부 출신 변호사는 “수사 개시 단계에서 2000만원 뇌물 혐의였다가 두세 배씩 확대되는 경우도 많고, 반대로 처음에 파악된 혐의를 다 입증하지 못하는 수사 역시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수사 결과 기준이 아닌 수사 개시 단계 기준으로 권한의 적법성을 따지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은 2022년 1월부터 제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올 2월 공포된 형사소송법 개정안(321조)을 4년 안에 시행하기로 했는데 “현 정부 임기 종료 전 시행” 기조대로 시기를 확정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이번 권력기관 개혁은 해방 이후 처음 경험하는 형사·사법의 중대 변혁”이라고 평가했다.

‘검찰 힘 빼기’와는 반대로 경찰은 검찰의 지휘를 받는 관계가 아닌 협력관계로 재편된다. 이로 인해 비대해지는 경찰권을 견제하기 위해 자치경찰제를 도입한다는 게 당·정·청의 논리다. 경찰 역할을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나눠 국가경찰 안에 독립 수사기관을 설치한다. 자치경찰은 광역 단위로 시행하고 시·도 자치경찰위원회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생활안전, 교통, 여성·아동·노약자, 지역행사 경비 등 업무를 처리한다.

관련 법 개정안을 발의한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비용 문제와 조직 불안, 민주적 통제에 대한 우려 등을 고려해 역할만 구분하고 경찰 조직 이원화는 추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대검찰청은 이날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혼선을 우려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검사장급 간부는 “국민을 상대로 사법제도를 실험하는 행태는 매우 부적절하고 국민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라며 “하고 싶은 대로만 밀어붙인다면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검 관계자는 “검찰이 개별적 입장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시행령안이 확정될 때까지 형사사법 절차에서 인권 보호, 범죄 대응 역량이 약화하지 않는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겠다”고 말했다.

김은혜 미래통합당 대변인은 “현재 대통령령 초안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식물’로, 검찰을 ‘행정 공무원’으로 고착화하도록 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정의당 김종철 선임대변인은 “사법개혁의 대의로 출발한 검찰 개혁이 정권에 순응하는 검찰을 만들려는 것으로 비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재점검해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새롬·김효성·강광우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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