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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한 뒤 "시간 없어, 넘어가죠" 의원에…베조스 부글부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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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29일 화상 청문회에서 답변 중인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CEO. 표정이 가히 좋지 않다. AP=연합뉴스

지난 29일 화상 청문회에서 답변 중인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CEO. 표정이 가히 좋지 않다. AP=연합뉴스

세계 1위 부자도 청문회에선 진땀깨나 흘렸다. 지난 29일(현지시간)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 산하 반(反)독점 소위원회 화상 청문회에 출석한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 얘기다. 애플의 팀 쿡,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구글의 선다 피차이 CEO도 한 자리에 불러모은 일명 ‘블록버스터 청문회’였다.

의원들은 약 5시간에 걸쳐 갑질 및 독과점 비위 등에 대한 질문을 퍼부었다. 일부 의원들은 베조스에게 질문을 던진 뒤 “내게 주어진 제한시간이 다 돼가니 (답변은) 됐다”고 말을 자르기도 했다. 이번 출석으로 ‘청문회 데뷔전’을 치른 베조스는 때로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자산은 포브스 집계에 따르면 30일 현재 1800억 달러(약 214조9200억원)에 이른다.

뉴욕타임스(NYT)는 “의회가 도합 5조 달러(약 5972억원)의 가치를 보유한 기업 네 곳을 집중 포화했다”며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이 근래 보기 드물게 처음으로 공통의 적을 마주해 같은 목소리를 냈다”고 평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의원들이 CEO들을 가차 없이 몰아붙였다”며 “불꽃 튀는 5시간이었다”고 전했다.

의원들은 이날 청문회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13개월 동안 약 130만건의 서류를 모으고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자료를 모았다. IT 거대 기업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건 의회뿐 아니다. 연방 정부 및 주(州) 정부, 연방거래위원회(FTC) 역시 이들 기업이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고 있다는 의혹으로 조사를 벌였다.

화상 청문회가 진행된 미국 하원 2141호. 화면에 베조스가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화상 청문회가 진행된 미국 하원 2141호. 화면에 베조스가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구글ㆍ애플ㆍ페이스북ㆍ아마존에 쏟아지는 집중 포화의 핵심은 소비자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독점적 지위를 악용해 자사에 유리한 시스템을 만들고, 경쟁사를 위협하거나 갑질을 한다는 의혹이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이 때문에 기술 혁신이 더뎌지고 있으며 소비자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날 청문회에서도 관련 질의가 줄을 이었다. 아마존 본사가 있는 워싱턴주가 지역구인 민주당의 프라밀라 자야팔 의원은 베조스에게 “아마존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온라인 상거래 시장의 게임의 룰을 만드는데, 정작 아마존은 그 룰을 지키지 않는다”며 “아마존의 개인 판매자들은 아마존이 행패를 부려서 두렵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와 관련해 아마존에 ‘갑질을 당했다’는 요지의 개인 판매자 증언도 제출했다.

베조스 CEO는 “사실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 조직적 행태는 없다고 본다”고 답했다. 상세한 답변을 하려다 질의시간 초과로 저지당했다.

답변 중인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AP=연합뉴스

답변 중인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AP=연합뉴스

페이스북의 저커버그 CEO도 의원들의 맹공을 피하지 못했다. 특히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인수하는 과정에 대한 질의가 쏟아졌다. 의원들은 “새로운 경쟁사가 나타나면 인수를 해버리는 방식으로 경쟁을 아예 제거하는 것 아니냐”고 질의했다. 저커버그가 과거 “인스타그램은 우리에게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쓴 메모가 증거로 제출됐다.

저커버그는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이미 FTC가 조사한 (뒤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린) 메모”라며 “비위 행위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저커버그는 이어 “혁신을 계속 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라며 경쟁사 인수는 혁신의 일환이라는 논리를 폈다.

팀 쿡 "삼성이 주도해도 괜찮다. 우리 목표는 최대 아닌 최고" 

구글에 대한 의원들의 공세는 다각도로 이뤄졌다. 도마에 오른 주제도 독점과 친중 의혹, 보수 탄압까지 다양했다.

구글의 피차이 CEO에겐 소위원회 위원장이 직접 예봉을 꺼내 들었다. 데이비드 시실라인 위원장은 “구글은 인터넷 플랫폼을 독점하며 인터넷을 자신만을 위한 비밀의 정원으로 만들었다”며 “경쟁사의 트래픽을 줄여야 한다는 구글 내부 문서도 입수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피차이는 “그런 문서는 알지 못하며, 우리는 경쟁을 환영한다”며 예봉을 피해갔다.

구글의 피차이 CEO. AP=연합뉴스

구글의 피차이 CEO. AP=연합뉴스

구글에 대해선 미국 여야 모두 친중 의혹도 제기했다. 구글이 중국 내 사업 확장을 하면서 미 국방부도 구글에 “중국과 협력하지 말라”고 공개 경고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피차이는 “우리는 중국군과 협력하지 않으며, 중국에서의 사업 비율도 경쟁사에 비해선 굉장히 적다”고 답했다.

공화당은 이날 특히 구글에 대해 보수 탄압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짐 조던 의원은 피차이 CEO에게 “(구글은) 보수당을 잡으려고 안달이 났다”고 일부 보수 성향의 콘텐트가 구글ㆍ유튜브 등에서 삭제되거나 검색이 잘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애플의 팀 쿡 CEO. 로이터=연합뉴스

애플의 팀 쿡 CEO. 로이터=연합뉴스

애플의 팀 쿡 CEO는 비교적 수월하게 비판을 막아냈다는 게 WSJ의 평가다. 애플의 앱스토어의 독점 비위 의혹과 관련 쿡은 “우린 앱 시장을 오히려 확대했다”고 응수했다. 스마트폰 기술 독점 문제와 관련 쿡은 “스마트폰 시장을 독점하는 건 오히려 삼성ㆍLGㆍ화웨이”라며 “우린 그래도 상관없다. 우리 목표는 최대(the most)가 아닌 최고(the best)”라고 답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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