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의혹 외교관 소환 “감봉” 해놓고…외교부 “징계 사유는 확인해 줄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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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외교부 고위 공무원 A씨가 2017년 주뉴질랜드 대사관에서 현지인 남성 직원 B씨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정부가 적절히 처리했는지를 두고 의문이 제기된다.

정부 제대로 조사했는지 불투명 #한·뉴질랜드 정상 통화서 망신살

현지 언론 뉴스허브는 25일(현지시간) “B씨는 A씨가 컴퓨터의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등의 핑계로 불러 갑자기 왼쪽 엉덩이를 꽉 쥐었고(squeeze), 가슴 등 주요 부위를 움켜 쥐었다(grab)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뉴스허브는 “대사관 내부 자료”라며 A씨의 진술서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A씨는 “성추행 의도가 전혀 없었다. 서로 기억이 달라 논의의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평소 운동을 많이 하는 B씨가 그날따라 배가 좀 나온 것 같아 농담하며 그의 배를 두드린 것”이라며 “그의 가슴을 양 손으로 툭툭 친(knocking) 적은 있지만 움켜잡은 적은 없다”고 했다.

외교부는 A씨를 한국으로 소환해 조사한 뒤 감봉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외교부는 이게 성추행 가해에 따른 징계인지, 다른 사안 때문인지도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외교관 면책특권을 내세워 현지 경찰 조사에 불응한 데 이어 해당 사안을 제대로 조사했는지 여부조차 명확히 밝히지 않으며 외교부가 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A씨의 면책특권은 뉴질랜드에서만 유효하다. 한국에 들어오면 형사 소추의 대상이 된다.

이 문제는 28일 문재인 대통령과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간 전화 통화에서도 거론됐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9일 “뉴질랜드 총리가 자국 언론에 보도된 사건을 언급했고 대통령이 ‘관계 부처가 사실관계를 보고 처리할 것’이라고 답한 게 전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던 총리는 “이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외교관에게든, 뉴질랜드 국민에게든 법은 법이다. 우리의 정의가 구현되도록 한국 정부에 계속 촉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27일 기자회견)

한편 B씨는 이 사안을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고 한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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