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도 지켜줬던 영업비밀인데···SH공사, 돌연 건설원가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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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세종시 호수공원에서 바라본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 [뉴스1]

28일 세종시 호수공원에서 바라본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 [뉴스1]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앞으로 준공하는 분양 아파트의 건설 원가를 61개 항목별로 공개하기로 했다. SH공사가 입주자 모집 공고를 하는 공공분양아파트가 대상이다. 도급공사비(47개), 지급자재비(6개), 기타 직접공사비(6개), 그 밖의 비용(2개) 등 총 61개 항목의 원가를 공개하겠다는 방침이다.

SH공사, 준공하는 공공분양 아파트 #건설원가 61개 항목별로 공개하기로 #"분상제 시행 앞두고 건설사 옥죄기"

SH공사는 이미 준공한 구로구 항동 하버라인 4단지의 ‘준공건설원가 내역서’부터 29일 시범 공개한다고 28일 밝혔다. 이어 강동구 고덕강일 아파트 원가도 공개할 예정이다.

분양가에 거품이 끼어 있다는 논란에 국토부는 지난해 공공택지에 공급되는 공동주택의 분양원가 공시항목을 12개에서 62개로 세분화했다. 이에 따라 공개되는 공사비 관련 내역은 총 51개 항목이지만, 이보다 더 자세히 밝히겠다는 취지다.

SH공사 측은 “분양가 공시항목은 공개하고 있지만, 분양가 공개서는 실제 건설 원가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며 "이를 보완하고자 실제 투입된 공사비를 토대로 작성한 준공 건설원가 내역서를 공개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실련과 관련 소송 진행 중인데 갑자기 공개 발표

김세용 SH공사 사장. [뉴스1]

김세용 SH공사 사장. [뉴스1]

분양가 거품 논쟁에 불을 붙인 것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다. 경실련은 지난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SH공사를 상대로 준공건설원가를 공개하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공공택지 분양원가를 공개하고 있지만, 건설사별 산식에 따르다보니 실제 분양원가와 전혀 다른 가격이 공개되고 있다는 것이 경실련의 주장이다. 이에 도급공사비와 지급자재비용, 공사비용 세부명세서 등을 공개하라는 주장이다.

그 결과 지난 4월 SH는 1심에서 패소했고, “공개 판결 내용이 부당하다”며 항소한 상태다. 승소한 경실련도 “원하는 수준으로 판결나지 않았다”며 맞항소를 했다. 이처럼 항소심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SH공사가 갑자기 원가 공개에 나선 것이다. 같은 소송 중인 LH 측은 “아직 1심이 진행 중이라, 내일(29일) 공개하겠다는 SH의 원가 내역서를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 "기업 영업비밀 인정해 공개 안 해"

건설업계는 준공건설원가 공개가 정치적으로 확산할까 우려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준공건설원가와 실제 분양가 차이가 크다며 거품 논쟁이 재확산될 경우 아무래도 타격이 있지 않겠냐”며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시점에 SH가 소송이 진행 중인 건에 대해 공개에 나선 건 여러 의미로 해석된다”고 덧붙였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SH공사 측이 원가 공개 관련해 사전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업계에서 전해진다

아파트값이 치솟았을 때마다 ‘원가 논쟁’에는 불이 붙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2년 대선 당시 ‘분양가 원가 공개’를 공언했지만, 기업의 영업비밀을 인정해 분양원가를 공개하지 않기로 선언한 바 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장사하는 것인데 10배 남는 장사도 있고, 10배 밑지는 장사도 있다”며 “경제계나 건설업계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의 소신”이라고 밝혔다. 여권의 반발이 거세지자, 노 전 대통령은 원가 공개의 대안으로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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