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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 넘치는 돈에 장사 없다…달러 가치 2년만에 최저치로

중앙일보

입력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뭐든 흔해지면 값은 떨어진다. 물건이든 돈이든 예외가 없다. 흘러넘치는 돈의 홍수 속 미국 달러 가치도 낙하 중이다. 2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내려갔다.

주요 6개국 통화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27일(현지시간) 전날보다 0.79% 내린 93.69를 기록했다. 2018년 6월 이후 처음으로 93대로 주저앉았다. 미국 달러화 약세를 점치는 달러화 숏 포지션도 2018년 4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 달러 약세는 이례적이다. 미국 달러는 대표적인 안전자산이다. 그래서 경기가 꺼질 때면 달러 수요가 늘면서 몸값이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인한 경제 침체 국면에선 달러 값이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3개월간 달러 인덱스는 거의 7% 하락했다. 오안다 증권의 에드워드 모야 수석 애널리스트는 로이터 인터뷰에서 “달러화가 안전자산의 지위를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달러의 몸값을 떨어뜨린 건 시중에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이다. 코로나 19로 인한 경기 둔화를 막기 위해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아낌없이 돈줄을 풀었다. 미국 정부는 이미 4차례에 걸려 2조8000억 달러(약 3363조원)의 재정을 쏟아부어 경기 부양에 나섰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1조 달러(약 1201조원) 규모의 5차 부양책도 준비하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회사채 매입까지 하며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다. 28~29일(현지시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당분간 저금리 기조를 이어갈 것이란 입장을 확인할 것으로 시장은 내다보고 있다.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명동점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는 모습. [중앙포토]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명동점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는 모습. [중앙포토]

각국이 달러 자산에서 벗어나 다른 통화로 자산을 다변화하는 것도 달러 약세의 요인으로 꼽힌다. 코로나19 환자 수가 줄어드는 국가의 통화로 갈아타면서 달러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것이다. 그 반작용으로 오르는 것이 유로화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유로화는 이번 달에만 달러 대비 3.6% 상승했다.

넘치는 유동성과 함께 무엇보다 달러 약세를 부추기는 건 미국 경기 회복에 속도가 더뎌질 것이란 우려다. 캘리포니아와 텍사스ㆍ플로리다 등 일부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이들 지역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25% 이상을 차지한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앞으로 1년간 달러 값이 5% 가락 떨어질 수 있다”며 “최근의 하락세는 코로나19의 영향보다는 경제 펀더멘탈(기초체력)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비실대는 달러화가 기력을 회복할 때까지 당분간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소시에테제네랄의 키트 주크스 거시 전략가는 “달러 약세 추이를 가늠할 첫번째 시험대는 8월”이라며 “다음달에도 달러 약세가 이어지면 장기간의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문홍철 DB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보고서에서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추이에 따라 달러 인덱스 하단을 90초반대까지 열어두자”고 밝혔다.

달러값의 추가 하락이 제한적이란 시각도 있다. 라보뱅크의 제인 폴리 외환 전략가는 “달러화는 여전히 매력적인 자산인데다 최근 달러 매도세가 지나친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달러 약세는 일단 기업 실적과 미국 기업의 주가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다우존스는 “다국적 기술기업의 경우 매출의 57%가량을 해외에서 올리고 있는 만큼 달러 약세로 미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확보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증시로 해외 투자금 유입이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달러 약세로 미국 주식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지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는 “달러 약세가 이어지면 올해 해외 투자자가 3000억 달러어치의 미국 주식을 사들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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