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미디어에 비친 정신질환자의 모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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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인이란 못된 짓을 하거나 천한 신분을 표시하기 위하여, 인두로 신체 일부분을 지져 자국과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사회로부터 낙인찍힌 사람은, 이상하고 위험한 인간으로 분류되어 손가락질 받고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당한다. 낙인으로 인한 가장 직접적인 충격은 거부와 배제 당하는 것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은 정신과 영역에서 환자나 가족들이 흔히 겪는 심각한 문제다. 낙인은 수치심과 죄의식을 심어준다. 한번이라도 정신과 치료를 받았거나 입원한 적이 있는 사람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더라도 낙인찍힐 가능성이 항상 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친구와 이웃으로부터 소외당하고, 거부당하고, 고립감을 경험한다. 가족들 역시 가장 큰 희생자인데도 불구하고, 동정과 이해와 지지를 받기보다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죄인과 같이 죄의식과 수치심을 느끼게 되고 근거 없는 비난을 받게 된다.

정부나 개인을 통해 확보하는 연구기금에서도 낙인의 영향은 뚜렷이 나타난다. 1987년 미국에서 시행된 한 조사에 의하면, 암 환자의 경우는 1년에 한 환자당 200불, 심장질환을 앓는 환자는 150불, 근육질환 환자는 무려 1000불의 연구기금을 확보하지만, 정신분열병 환자는 매년 14불, 우울증은 10불에 불과하다고 한다. 또 심장질환과 암 환자의 경우에는 정부와 개인 후원금의 비율이 60대 40이지만, 정신질환의 경우에는 85%가 정부로부터 그것도 정치적 배려에서 받게 된다고 한다.

일반인은 정신질환자의 난폭 행동을 예측할 수 없다는 이유로 모든 편견을 합리화한다. 실제로 어떤 지역에 환자를 위한 시설을 만들려고 해도, 주민들은 집 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반대운동을 벌이고, 충분한 보상이 된 후에는 또 다시 안전 문제를 내세운다. 언론 역시 정신질환자들을 공격적이고, 위험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인간으로 묘사하는데 열을 올린다.

많은 정신질환 중에서도 특히 정신분열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가장 강력하며, 이것은 환자의 사회복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낙인과 싸우는 일은 정신과가 해야 할 제일 첫 번째 과제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정신과 의사, 정신과와 연관된 분야의 전문가, 가족, 그리고 환자들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정신과 의사와 정신보건 전문요원들은 낙인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의과대학 교육과정을 포함한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에서도 정신질환의 낙인에 대한 교육을 시켜야 한다. 가족과 환자들 역시 가족협회를 중심으로 숨지 말고 당당하게 부딪쳐야 한다. 또 정신질환의 실체와 미신에 대한 언론의 잘못된 방송 내용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항의함으로써 잘못된 시각을 교정해야 한다.

이번 학회에서 본 연자는 '매스미디어에 비친 정신질환자의 모습'이라는 연제하에 비디오를 방영하고자 한다.

비디오의 원 제목은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The Stigma of Mental Illness)'이고, 부제목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의 증거'로 하버드 의과대학의 매사추세츠 정신보건센터에서 진료부장으로 근무하는 켄 덕워스(Ken Duckworth)가 미국 정신질환자 가족협회(The National Alliance for the Mentally Ill: NAMI)의 지원을 받아 의과 대학생의 교육목적으로 제작한 것이다. 이번 학회에서 방영하는 비디오는 본 연자가 번역을 하고 양산병원 정신분열병 치료센터가 한국어로 더빙 제작한 것이다.

비디오 방영 시간은 15분으로 비디오는 먼저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담은 사이코 영화의 한 장면씩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대사들은 대부분 거친 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미친 게 어떤지 알아, 미친 걸 보여주지", "병신 새끼들, 미친놈들, 또라이들", "이 미친 새끼야, 죽어버려“ “정신병적 살인마가 철통같은 감시를 뚫고 주립교도소에서 탈출했습니다” 등이다.

그 다음에는 켄 덕워스가 자신의 아버지가 조울 정신병을 앓았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편견과 차별을 경험하였다는 심정을 토로한다. 그리고 TV, 비디오, 만화책, 학용품, 광고물, 건강보험, 심지어 전문 의학학술잡지에서조차 정신질환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어준다고 말한다.

그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낙인이 생기는 이유가

  • 첫째, 뇌에 대해서 아직까지 잘 모르기 때문이고

  • 둘째, 사람들은 이해되지 않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고

  • 셋째, 현실감이나 자신을 상실하기 때문에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이고,

  • 마지막으로 병 자체가 낯설게 여겨지기 때문에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의 개인적 경험 때문에,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낙인찍히고 또 그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어떻게 굳어지는지를 보아왔다고 말하면서, 그러한 과정을 네 가지 범주로 분류하였다.

  • 첫번째 범주가 정신질환자가 흉악한 정신병적 살인자로 묘사되는 경우

  • 두 번째 범주는 정신질환자를 사기꾼으로 묘사하는 경우

  • 세 번째 범주는 정신질환자를 우스꽝스러운 바보로 취급하는 것이며

  • 네 번째 범주는 치료자를 악인으로, 또는 정신과 의사를 어리석거나 못된 사기꾼으로 묘사하는 경우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각 범주에 속하는 영화 장면들을 보여준다.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이 있기 때문에 환자들은 수치심을 느끼게 되고, 그러한 수치심 때문에 환자들은 치료를 잘 받으려 하지 않고, 집이나 직장을 구할 때도 차별 대우를 받으며,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숨긴다고 한다. 그리고 정신과 환자들이 직접 자신이 받은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토로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다시 네 가지 범주에 대한 영화를 보여주고, 여러 명의 정신과 환자들이 어떤 태도로 그러한 편견과 낙인을 극복하였는지를 말하는 것으로 이 비디오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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