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 환자에 대한 편견의 역사와 문제점(2)

중앙일보

입력

3. 한국근대의 정신장애 환자에 대한 견해의 변화

해방 후 최근까지의 경향을 간단히 적어보기로 하겠다.

1950년대는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시기이다. 새로운 역동정신의학의 영향을 입은 정신과의사들의 활동도 활발했고 세계보건기구의 정신건강의 날 선포·보건당국의 진취적 자세·환자에 대한 인도적 관심으로 인간적 환경의 최신식 국립정신병원의 건립·정신건강협회 창립 등 어떤 의미에서는 오늘날보다 훨씬 순수하고 열정적인 분위기였다.

1960년대의 정신보건법안에는 의사의 환자에 대한 치료권만 강조했고 개방병동·지역사회 서비스·재활에 관한 조항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정신과 의사의 정신장애인관은 아직 보수적이었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를 지나 1980년대 초반까지 군사정부의 사회방위적 정책이 두드러져 수용위주의 정책이 '정신장애자는 위험하다' 는 전제 아래서 시행되었다. 근대화와 더불어 정신장애자가 소외되고 사설수용소의 창궐환자유기현상이 일어났다.

TV 추적60분(1983)으로 수용소의 환자인권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병상 수에만 집착하였고 수용위주 보건정책으로 정신병원의 대형화를 부추겼다. 정신의학계의 사고전환이 매우 서서히 일어나 일부는 지역정신보건과 정신과 재활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시도했다.

1990년대에는 정책입안자들이 비로소 환자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어 그 방향으로 정신보건법이 제정되었으나 여전히 환자의 수용치료의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보호자에 의한 환자유기현상은 여전하였고 대형병원도 여전히 남아있게 되었다.

다만, 지역정신보건사업 이 처음으로 시작되었고, 정신보건가족협회, 정신사회재활협회 등 중요한 NGO가 창립되어 가족교육을 활발히 시작하여 국민계몽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정신건강의 날'을 부활시켜 해마다 편견해소와 정신건강 계몽에 힘쓰게 되었다.

4. 생각해야 할 문제점들

세계보건기구가 강조하는 정신장애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의 타파는 그 목적이 매우 실제적인 데에 있다. 사회적 편견과 낙인 때문에 치료받으면 나을 수 있는 환자를 숨긴다든가·제대로 치료하는 것을 기피한다든가·통원치료를 중단한다든가·퇴원 뒤에도 편견과 낙인 때문에 사회복귀를 할 수 없게 된다든가·혹은 '환자는 위험하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감금수용위주의 치료를 선호하여 환자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유린 당한다든가 - 이런 것들을 없애자는 것이고, 인간적 환경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재활할 뿐 아니라 조기발견 조기치료 - 할 수만 있으면 여러 가지 예방에도 힘쓰자는 것이다.

정신장애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과 수치와 양가감정을 어쩌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실제적인 목적을 완수하려면 이 근원적 반응을 도외시하고 시작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기피, 은폐, 배척이 이 근원적 반응에 연계되기 때문이다.

서양의 기독교문명은 앞에서도 보았듯이 정신장애 환자에 대한 태도가 너무나 극단적이고 선과 악의 양극 사이의 동요가 심하다. 지나친 배척과 박해 뒤에 이에 속죄하듯 한껏 높은 박애정신을 발휘한다. 우리가 이 동요의 흐름에 그대로 순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동양의 전통문화가 그래온 것처럼 우리는 보다 냉정하게 전체를 보고 전체에 입각한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먼저 치료되지 않은 정신장애 환자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당혹감과 양가감정을 현실로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것이 마치 없는 듯이 행동한다면 위선이거나 순진한 것이다. 이런 반응은 타당한 근거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도 저렇게 되면 어떻게 하나”하는 불안에서 나온다. 이것은 반드시 편견이라 할 수 없다. 다만 이런 감정을 토대로 편견과 낙인이 파생될 수 있으므로 그렇게 파생되는 이차적 연결고리를 끊을 필요가 있다.

“나도 저와 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사람들은 환자를 멸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니고 저들만 그렇다”고 자기방어를 하는 데서 낙인을 찍게 된다. 이 두 가지 태도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그러나 치료를 하면 나을 수 있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불안은 경감된다.

불행히도 만성화되는 환자가 있고 모든 경우에 치료성과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재활과 정기적인 통원치료로 많은 만성환자를 사회로 복귀시킬 수 있다. 정신장애에 대한 우수한 치료법의 개발과 이의 적극적인 활용은 무엇보다도 편견해소의 가장 가까운 방법이다.

정신장애자에 대한 편견은 비합리적인 것에 대한 원시적 공포 이외에 사회경제적 생산성의 척도에 의거한 차별에서 나온다. 이것은 신체장애자에 대한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장애자와 고통받는 사람을 돕는 것이 최상의 높은 선진문화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계몽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중매체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정기적이고 지속적인 사회특수층을 위한 정신건강교육은 편견해소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범국민적인 편견해소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1950년대에 결성되었던 각계각층이 참여한 정신건강협회의 부활이 바람직하다.

편견지수의 정기적인 조사발표도 효과적일 것이다. 이 경우 법조인, 언론인, 정치인 뿐 아니라 의료인 자신, 정신의료인 자신의 편견, 환자가족의 편견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우리 스스로를 점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정신병에 면역된 자는 없다" - 세계보건기구 책자에 적힌 구절이다.

앞장으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