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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891명 어딨는지 모른다···'경찰 1명당 35명' 관리 구멍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월북한 것으로 추정된 20대 북한 이탈 주민(탈북민)김모(24)씨는 지난달 지인 여성을 자택에서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였다.   연합뉴스.

최근 월북한 것으로 추정된 20대 북한 이탈 주민(탈북민)김모(24)씨는 지난달 지인 여성을 자택에서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였다. 연합뉴스.

탈북자 한 명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재입북하면서 경계에 실패한 군은 물론 탈북자의 신변 보호를 맡은 경찰의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번에 경찰은 월북한 김모(24)씨를 성폭행 피의자로 조사했고 월북 첩보까지 접수했지만 김씨의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내부에서는 경찰관 한 명이 탈북자 30~50명을 관리하는 현재같은 방식이 개선되지 않으면 언제든 이번 같은 월북사건이 재발해도 막지 못할 것이란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경찰, 탈북자 5년간 신변 보호 책임

정부 당국이 북한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감염 통로로 지목한 재입북자로 최근 잠적한 20대 남성 탈북자를 특정하고 월북 경로 등을 조사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1

정부 당국이 북한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감염 통로로 지목한 재입북자로 최근 잠적한 20대 남성 탈북자를 특정하고 월북 경로 등을 조사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1

탈북자는 국내에 들어오면 먼저 통일부 산하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에서 12주 동안 남한 사회 정착을 위한 기초 교육을 받는다. 하나원에서 나온 후에는 5년 동안 ▶거주지 보호 담당관(지자체 담당관 인력 약 244명) ▶신변 보호 담당관(경찰 인력 약 914명) ▶지역 보호 담당관(고용노동부 인력 약 65명)의 관리를 받는다. 이 기간에 탈북자는 신변 보호와 거주지·취업 지원 등을 받는다.

탈북자가 가장 밀접히 연락을 주고받는 건 신변 보호를 담당하는 경찰이다. 김태희 자유와인권을위한탈북민연대 대표는 “처음 남한에 온 사람들이 주변 환경이나 지리 등을 모르니까 담당관에게 전화를 자주 한다. 자립을 못 하는 일부 탈북자들은 일자리 조언도 구하고 또 일부는 정착 과정에서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상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입북한 김씨는 '다'급으로 관리 허점 

(서울=뉴스1) 성동훈 기자 =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게 질의하고 있다. 뉴스1

(서울=뉴스1) 성동훈 기자 =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게 질의하고 있다. 뉴스1

경찰은 탈북자를 대북 활동과 북의 위협 수위에 따라 가, 나, 다 등급으로 분류해 관리한다. 가장 고위험 등급에 속하는 '가'급의 경우 최소 2명 이상의 중무장한 경찰이 24시간 밀착 경호를 수행한다. 4.15 총선에서 당선된 탈북자 출신 국회의원 태영호ㆍ지성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국회의장급의 신변 보호를 받는다. 이들의 경호인력은 국회 본회의장이나 상임위 회의장 내 출입은 불가하지만 실탄을 장착한 총기도 휴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관 1인당 탈북자 34.4명 맡아 

김포에 거주하는 20대 남성 탈북자가 지난 19일쯤 재입북 한 것으로 26일 알려졌다.뉴스1

김포에 거주하는 20대 남성 탈북자가 지난 19일쯤 재입북 한 것으로 26일 알려졌다.뉴스1

경찰 관계자는 “신변 보호 특성상 가~다급 탈북자의 구체적인 관리상의 차이를 밝힐 순 없다"면서도 "등급에 따라 관리 방식도 연락 주기도 다르다"고 전했다. 문제는 '다'급으로 분류된 탈북자 관리에 허점이 많다는 점이다. 이번에 월북한 김씨의 경우도 '다'급에 해당하는 탈북자다.

경찰은 관리 인력의 부족을 꼽는다. 통일부에 따르면 작년 7월 기준 전체 탈북자 수는 3만 1457명, 이들의 신변 보호 담당 경찰 인력은 915명이다. 경찰관 1명당 탈북자 34.4명을 담당하는 셈이다. 이런 문제 등으로 지난해 7월 기준 거주지가 불분명한 탈북자가 891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인 2017년에는 거주지 불명 탈북자가 928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인천의 경우 신변 보호 담당관은 59명이지만 탈북자는 2956명으로, 경찰관 1인당 탈북자 50여명을 담당한다. 이번에도 경찰은 김씨를 성폭행범으로 수사 중이었지만, 경찰의 신변보호담당관은 김씨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했고, 경찰은 또 김씨가 월북한 후인 21일 구속영장을 발부받고 출국금지 조치했다. 인천의 경찰 관계자는 "탈북자 신변 보호 담당관 업무가 만만치 않다"며 "탈북자 관리도 하지만 대북전단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현장도 쫓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 관리 아쉬워…부처 간 소통 점검해야”

김태희 자유와인권을위한탈북민연대 대표는 “경찰이라고 해서 탈북자에 24시간 붙어있을 수 없다. 다만 김씨의 경우 아직 탈북한 지 5년이 채 안 된 사람이고 항간에서 성폭력 논란이 있었으면 경찰에서도 좀 더 관리를 했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든다”고 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사실 신변 보호라는 게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하다 보면 인권 침해 여지가 있고, 너무 먼 거리에서 하다 보면 이런 사고가 발생한다. 참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도 “물론 (탈북자) 개인의 책임이 가장 크겠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부처 간 소통을 재점검해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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