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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 손 터는 현산, 망연자실 금호…'악재만 가득' 항공재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4월 21일 인천국제공항 주기장에 아시아나항공 여객기들이 주기돼있다. 뉴시스

지난 4월 21일 인천국제공항 주기장에 아시아나항공 여객기들이 주기돼있다. 뉴시스

HDC현대산업개발이 26일 오랜 침묵을 깨고 ‘아시아나항공 재실사 카드’를 내놓았다. 지난달 25일 정몽규 HDC그룹 회장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회동한 지 한 달 만이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인수조건 재협의’로 한발 물러섰지만, 현대산업개발은 아예 재실사로 인수 상황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2조5000억원 상당의 아시아나항공 ‘빅딜’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실상 '노딜'로 기울고 있다.

[뉴스분석]

교착상태에 빠진 아시아나항공 매각 일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교착상태에 빠진 아시아나항공 매각 일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은 “명백한 확약 위반 등 거래종결의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며 “다음 달 중순부터 12주 정도 아시아나항공과 자회사들의 재실사를 나설 것을 제안하는 공문을 지난 24일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에 보냈다”고 26일 밝혔다. 이는 금호산업이 지난 14일 ‘계약서상 주요 선행조건이 마무리됐으니 계약을 종결하자’고 요구한 것에 따른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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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점검 요청사항으로 지난해 말 2조8000억원의 부채가 추가로 파악된 데다 동의 없이 채권단으로부터 1조7000억원을 항공운영자금으로 차입한 점을 꼽았다. 빚이 4조5000억원 늘면서 올해 1분기 아시아나항공 부채비율은 6281%에 이른다. 지난해 말(1386%)과 비교해 3개월 사이 4배 이상 불었다.

현산의 재실사를 제안하는 근거.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현산의 재실사를 제안하는 근거.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현산은 또 지난해 회계연도 내부회계 관리제도에 대한 외부감사인의 감사의견이 부적정인 점, 기내식 관련 계열사 부당지원,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투자손실 문제 등도 점검해야 한다고 봤다. 현산은 “4월 초부터 지금까지 15차례 정식 공문을 발송해 재점검이 필요한 세부사항을 금호산업에 전달했지만, 충분한 자료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 주체인 금호산업은 이에 대해 “당장 입장을 낼 만한 상황이 아니다”며 침묵했다. 금호산업 관계자는 “입장이 정리되면 밝히겠다”며 난감해했다. 금호산업 측이 쉽게 입장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현산의 재실사 요구를 수용할 수도, 수용하지 않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수용도, 수용 거부도 어려운 조건 

금호가 현산의 재실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계약은 깨지게 된다. ‘파혼’의 책임을 물으며 계약금(2500억원)을 놓고 진행될 법정 공방은 앞으로 닥칠 문제의 극히 일부다. 우선 아시아나 매각 대금을 받아 그룹 재건에 쓰려던 금호그룹의 계획에 막대한 차질이 생긴다. 금호가 금호산업 지분을 담보로 산업은행 등 채권단에 진 빚을 갚을 길은 더욱 멀어진다.

아시아나의 새 주인을 찾아 나선다고 하더라도 지난해보다 나빠진 환경 속에서 매물을 내는 것이라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가격을 낮추거나, 구조조정 등 강도 높은 선행조치가 필요할 수 있다. 아시아나의 저비용항공사(LCC)인 에어부산과 에어서울을 떼어서 파는 것을 검토할 수 있지만, 이미 자본 잠식 상태라 누가 산다고 나설지도 의문이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지난해 11월 12일 서울 용산구 본사 대회의실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지난해 11월 12일 서울 용산구 본사 대회의실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산의 재실사 요구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고난이 예고돼 있다. 12주간 재실사를 하면 아시아나와 금호그룹은 11월까지 불확실성 속에서 보내야 한다. 최악의 경우 재실사 허용이라는 ‘수모’를 겪고 계약까지 놓칠 위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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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산은 재실사 이후 가격 협상으로 인수할지, 아니면 포기할지를 판단하면 되기 때문에 손해 보는 게 없다”며 “재실사를 할 경우 금호산업은 손에 쥐는 구주 매각대금이 줄어들 수 있어 이런 현산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실적.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아시아나항공 실적.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익명을 요청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도 “앞으로 벌어들일 수익 능력을 바탕으로 한 기업가치보다 부채가 더 많아 인수가치는 ‘제로’일 수 있다”며 “인수가치 재산정은 금호산업이나 아시아나항공에 불리하다”고 말했다

현산이 꺼낸 ‘재실사 카드’를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주목된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만약 계약이 파기되면 채권단에게 모든 짐이 돌아가게 된다”면서 “아시아나항공 분리 매각까지 검토하겠지만, 워낙 업황이 좋지 않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칫 아시아나항공이 항공업계의 대우조선해양이 될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허 교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아 채권단 출자 전환을 통해 대우조선해양처럼 관리 운영하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아시아나항공이 30년간 시장에서 쌓은 경쟁력이 약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스타 엎친 데 아시아나 덮치고… 항공업계 ‘비상’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 포기를 선언한 후 3일 만에 아시아나 인수합병까지 '시계 제로'에 빠지면서 항공 산업 재편은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스타 발 대량 실직과 파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LCC 업계에선 ”성한 곳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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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타는 제주항공을 상대로 한 계약 해지 무효 소송 준비에 주력하고 있다. 이스타 측은 “제주항공의 주장은 주식매매계약서에서 합의한 바와 다르고 제주항공은 계약을 해제할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는 이스타에 ‘플랜B’를 마련하라고 했지만, 묘수가 보이지 않는다.

이스타 노조는 “기업 회생 절차를 밟자”고 주장하고 있다. 동시에 사실상 대주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딸인 이수지 이스타 홀딩스 대표 등을 업무상 횡령과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이스타가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사실상 파산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인수 주체였던 제주항공도 유동성 위기에 처해있다. 1분기 기준 제주 항공의 부채는 1조815억원으로 부채비율이 483%에 달한다. 체불임금 등 미지급금 1700억원을 떠안고 이스타를 인수할 여력이 없었다는 분석이다. 제주항공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조만간 1585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나서지만, 흥행을 기대하기 어렵다. 여기에 자금 조달에 성공한다고 해도 항공 수요 회복 없이는 미봉책일 뿐이라 어려움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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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부분의 LCC는 3월부터 직원의 70%를 휴직시키고 있다. 정부 고용유지지원금 지급 기한이 끝나는 다음달 말 이후 항공 업계 실업 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LCC 사장단은 지난 22일 국회를 찾아가 “항공 실업 대란을 막기 위해 고용유지지원금 기한을 연장해달라”고 호소했다.

전영선ㆍ염지현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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