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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이스타에 발 뺀 제주항공…저가항공 파산 도미노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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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의 경영권 인수를 추진한 지 7개월여만인 23일 '노딜'(인수 무산)을 선언하면서 이에 따른 후폭풍이 한동안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양사가 그동안 인수·합병(M&A) 진행 과정에서 셧다운 지시 여부와 선결 조건 이행 여부 등을 놓고 갈등의 골이 깊었던 만큼 향후 치열한 소송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사진은 이날 인천국제공항 주기장에 멈춰서 있는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여객기. 연합뉴스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의 경영권 인수를 추진한 지 7개월여만인 23일 '노딜'(인수 무산)을 선언하면서 이에 따른 후폭풍이 한동안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양사가 그동안 인수·합병(M&A) 진행 과정에서 셧다운 지시 여부와 선결 조건 이행 여부 등을 놓고 갈등의 골이 깊었던 만큼 향후 치열한 소송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사진은 이날 인천국제공항 주기장에 멈춰서 있는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여객기. 연합뉴스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에서 끝내 발을 뺐다. 국내 첫 항공사 간 인수합병(M&A)이 무산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영난에 빠진 항공업계 재편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M&A 파기 책임 공방과 이행보증금을 둘러싼 소송전, 파산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이는 이스타항공 발 대규모 실직 사태도 코앞에 닥쳤다.

23일 제주항공과의 합병이 무산된 이스타항공 본사 모습. 장진영 기자

23일 제주항공과의 합병이 무산된 이스타항공 본사 모습. 장진영 기자

“불확실성 너무 커” 발 뺀 제주

제주항공은 23일 “이스타항공이 중요한 위반사항을 고치지 않았고, 거래종결 기한이 지나 이스타항공과의 주식매매계약(SPA)을 해제했다”고 공시했다. 제주항공과 이스타홀딩스가 SPA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지 7개월 만에 '노 딜'을 선언한 것이다.

[뉴스분석]

제주항공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의지와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황에서 인수를 강행하기에는 제주항공이 짊어져야 할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고 판단했다”며 인수 포기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주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의 피해에 대한 우려도 큰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2007년 출범한 이스타항공은 2016년을 제외하고 줄곧 적자를 이어왔다. 그러다 완전자본잠식(-1042억원) 상태인 지난해 매물로 나왔다. 제주항공에 지분 51.7%를 695억원에 매각하는 계약 체결엔 성공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양측은 매각 대금을 150억원 깎는 조건으로 지난 3월 초 SPA를 체결했지만, 이스타항공의 임금 체불, 전 노선 셧다운과 같은 문제가 불거지면서 제주항공은 인수 종결일을 차일피일 미뤄왔다.

제주항공은 250억원으로 늘어난 체불 임금을 포함한 1700억원 대의 미지급금 해결을 이스타항공 측에 요구했고, 지난 16일 요구안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며 “계약해지 권한이 생겼다”고 밝혔다. 당시 제주항공은 정부 중재 노력 등을 고려해 통보 시점을 조율하겠다고 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결국 일주일 만에 인수 포기를 공식화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인수 포기로 제주항공은 위기 속 재무부담을 덜 수 있다는 실리를 챙겼다”면서도 “대규모 실직자가 발생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책임에선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3일 제주항공과의 합병이 무산된 이스타항공 본사 모습. 장진영 기자

23일 제주항공과의 합병이 무산된 이스타항공 본사 모습. 장진영 기자

"LCC 도미노 급여 체납, 파산 가능성도"

제주항공의 인수 포기 선언 직후 이스타항공은 입장 자료를 통해 “임직원 1600여명과 회사의 생존을 위해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법정관리에 돌입한 뒤 정부로부터 금융 지원을 통해 자력으로 경영을 이어가거나 제3의 인수자를 물색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스타항공의 자력 생존 가능성이 거의 없고, 업황 악화로 새로운 인수자를 찾는 방안도 요원하다. 이스타항공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더라도 회생보다는 청산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이 때문에 항공업계는 이스타항공 직원 1600명의 대량 실직 사태가 현실화할 것으로 우려한다.

고용유지지원금, 내달 말 이후 끊기는데… 

정부가 180일 어치를 지급하기로 한 항공업계 고용유지지원금이 다음 달 말 이후 끊기면, 이스타항공 발 대규모 실직 사태에 더해 저비용항공사(LCC)의 급여 체납과 도미노 파산 가능성도 제기된다.

허희영 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항공업계에서 시도된 첫 M&A 무산으로 안 좋은 전례가 만들어졌고, 파산과 청산의 악순환으로 대규모 실직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장기화 여파로 매출 급감에 따른 유동성 경색을 겪고 있는 국내 LCC들은 대규모 운휴, 휴직, 유상증자 등의 방안을 내놓은 상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올해까진 자산매각이나 유상증자로 LCC가 시간을 벌겠지만, 연말 또는 내년부터는 항공업계 인적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앙포토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앙포토

이번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 실패는 국토교통부 등 정부의 안일한 대처가 자초한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정부는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LCC 업계에 3000억원 규모의 유동성을 지원했다. 하지만 이스타항공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다. 대신 제주항공에 인수금융 1700억원을 지원하기로 하고 이스타항공 경영 정상화란 책임을 안겼다.

그러다가 이스타항공의 최대주주인 이상직 의원이 구설에 오르면서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우려해 무조건적인 지원은 어렵다며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했다. 뒤늦게 국토부와 고용노동부가 나서 인수를 전제로 제주항공에 추가 지원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제주항공 설득에는 실패했다.

이상직, 이 와중에 “책임은 제주항공에” 

이런 가운데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더불어민주당 이상직 의원은 합병 무산에 대한 책임을 제주항공에 돌렸다. 지난 22일 전주의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한 그는 “법적, 도덕적 책임이 제주항공에도 있음에도 지금 고용 승계와 미지급 임금이 중요하니 지분 헌납으로 일단 그것부터 하자고 했지만, 제주가 억지를 부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LCC 고용유지지원금은 티웨이나 에어부산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이스타항공을 지원 안 할 이유가 없다”며 “지방자치단체와 도민의 향토기업 이스타항공 살리기 운동, 그리고 정부의 지역 항공 LCC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정부와 지자체에 손을 벌렸다.

이에 대해 허 교수는 “항공업계 초유의 대량 실직은 결국 경영진의 잘못으로 귀결된다”면서 “이스타항공의 실질적 소유주인 이 의원의 윤리적 문제와 법적인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책임 있는 태도가 안 나오고 있다”고 꼬집었다.

인천국제공항에 멈춰 서 있는 아시아나 항공기. 연합뉴스

인천국제공항에 멈춰 서 있는 아시아나 항공기. 연합뉴스

아시아나 인수도 안갯속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가 불발되면서 항공업계는 HDC 현대산업개발(현산)의 아시아나 인수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교착 상태인 현산의 아시아나 인수도 물 건너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현산과 산업은행 등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은 지난달 공식적으로 재협상 이야기가 나온 지 40일이 지나도록 재협상 테이블도 꾸리지 못한 상태다. 현산은 금호산업과 채권단의 거래 종결 요구에도 묵묵부답을 유지하고 있다.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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