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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아시아나항공 인수 ‘원점’으로 돌린 정몽규 회장

중앙일보

입력

미래에셋·범현대가 ‘인수 난색’이 변수… 조급해진 산업은행 카드는?

51 vs 49 ‘게임의 법칙’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오른쪽)이 2019년 11월 아시아나항공 인수 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오른쪽)이 2019년 11월 아시아나항공 인수 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아시아나항공 채권단과 HDC현대산업개발(현대산업개발)이 6월 27일로 예정된 아시아나항공 주식매매계약 종결 시한을 오는 12월 말로 연장하고 재협상에 돌입한 가운데,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포기를 두고 정몽규 회장의 ‘무게 추’가 어디로 향할지 주목된다. 재계 안팎에서는 인수와 포기, 포기와 인수의 가능성을 ‘51 vs 49’로 본다. 그만큼 예측 불가 상황이라는 것이다. 결국 12월 말 종결 시한까지 어떤 변수가 얼마만큼 영향을 줄 것인지가 관건이다.

취재를 종합해 보면 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것이라는 전망의 주요 근거는 정몽규 회장의 인수 의지가 여전히 확고하다는 것이다. 우선 “정몽규 회장이 건설·부동산 사업을 넘어 ‘모빌리티 사업’으로의 업종 전환에 대한 의지가 강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강행할 것”이라는 얘기가 들린다. 현대산업개발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정 회장은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과감하게 전략을 수정하는 스타일인데, 아직까지 아시아나항공 인수 포기를 공식화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인수 의지가 높다는 뜻일 것”이라고 말했다.

급할 것 없는 정몽규, 재협상 시간을 벌다

현대산업개발은 6월 9일 입장을 내고 “KDB산업은행에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에 변함이 없음을 밝혔다”며 “인수 상황 재점검, 인수 조건 재협의 등 산은 및 계약 당사자 간의 진정성 있는 노력을 통해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성공적으로 종결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산은 역시 6월 10일 입장을 내고 “현대산업개발 측이 그동안 인수 여부에 관한 시장의 다양한 억측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 피력이 늦었지만 인수 의지에 변함이 없음을 밝힌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현대산업개발 직원들 사이에서는 “정몽규 회장이 과거 현대그룹 계열 분리 과정에서 자동차 대신 현대산업개발을 맡은 것에 대해 크게 아쉬워했다”는 얘기가 많다. 정 회장은 아버지 고(故) 정세영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1996년 30대 초반의 나이로 현대자동차 회장에 올랐으나, 현대그룹 계열 분리 때 현대산업개발로 자리를 옮겼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산업개발 직원들 사이에서 정몽규 회장이 지난해 11월 아시아나항공 인수 발표 기자회견에서 환하게 웃을 것을 두고 ‘정 회장의 그런 표정은 처음 봤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며 “정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통해 못다 이룬 모빌리티 사업에 대한 꿈을 실현할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고 했다.

정몽규 회장 입장에서는 산은에 아시아나항공 인수 재협상을 제안한 상황이라 당장 급할 것도 없는 상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산은은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무산되면 이 회사를 다시 떠안아야 하는데, 코로나19 위기 등으로 당장 재매각이 어려워 진퇴양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며 “반면 현대산업개발은 산은이 새로 제시한 계약 조건 등을 검토하는 입장이라, 인수냐 포기냐를 급하게 결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산은은 현대산업개발의 재협상 요구와 관련해 “현대산업개발 측에 먼저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제시해 줄 것을 요청했다”며 “협상 테이블로 직접 나와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해줄 것도 당부했다”고 했다.

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해도 향후 소송 등을 통해 납입한 인수 이행보증금 일부를 돌려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위험 부담을 줄이고 있다. 한화케미칼이 대우조선 해양 인수 무산 이후 소송을 거쳐 이행보증금 가운데 1000억원 이상을 돌려받은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정 회장이 임원들에게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해 ‘급할 것 없지 않느냐’는 취지의 얘기를 자주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경영학과)는 “현대산업개발의 입장 발표는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재확인한 것”이라며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채권단, 현대산업개발 3자 간 협의로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조속히 마무리해 하루빨리 아시아나항공 정상화 작업이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19 등 항공업계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인수 포기 전망도 만만찮다. 여기에 아시아나항공 인수의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하고 있는 미래에셋대우 측이 인수 포기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 된다.

그가 번 ‘시간’은 출구전략이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경영학부)는 “현대산업개발의 이번 입장 발표는 미래에셋대우와 공감대를 이뤄낸 결과로 볼 수 있다”면서도 “미래에셋대우가 최근 미국 내 15개 호텔 인수를 포기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상황에 따라 현대산업개발에 인수 포기 의향을 내비칠 가능성은 여전하다”고 했다.

재계 관계자는 “정 회장으로서는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가 확고하지만 항공업계 위기 등으로 미래에셋대우가 인수 포기에 대한 시그널을 주고 있고, 범(汎)현대가에서도 무리한 인수에 우려를 표하고 있어 고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발표했던 지난해 말에는 범현대가 기업들이 아시아나항공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등 ‘우회 지원’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으나, 코로나19로 촉발된 항공업계 위기로 유상증자 참여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산업개발 측이 재협상을 요구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현대산업개발은 “계약 체결일 이후 4조5000억원 이상의 부채가 증대돼 가는 상황”이라며 “향후 아시아나항공이 코로나19 등에 따른 지속적인 영업 실적 하락, 유동성 부족, 차입금 증대, 자본 잠식 등을 극복하고 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지원책과 계약 체결 당시의 본원가치를 회복하는 것을 전제로 계속기업으로 존속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수 과정에서 현대산업개발과 아시아나항공 측이 갈등을 빚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현대산업개발은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4월 21일 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에 긴급자금 1조7000억원 추가 차입 및 차입금의 영구전환사채 전환, 정관 변경, 임시주주총회 개최 계획 등을 통보했지만 사전 동의 없이 다음날 이사회에서 추가 자금 차입을 승인했다”며 “같은 달 24일에는 법률적 리스크가 상당한 부실 계열사에 총 1400억원 지원을 통보한 바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현대산업개발의 입장 표명을 두고 아시아나항공 인수 포기에 대한 일종의 ‘출구 전략’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현대산업개발이 계약 조건 변경이 불가피한 근거를 상세히 나열한 것은 인수 포기를 위한 명분 쌓기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산은 역시 “현대산업개발의 제시 조건은 이해관계자 간 많은 협의가 필요한 사항으로 서면으로만 논의를 진행하는 것의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산업개발 측이 서면을 통해서만 논의를 진행하자는 의견에는 자칫 진정성 자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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