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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에만 15번 "총서기" 불렀다···'시진핑=독재자' 판 짜는 美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이 중국의 지도자 시진핑(習近平)에 대한 호칭 변경을 통해 “시진핑=독재자” 프레임 짜기에 나서고 있다.

중국 때리기 선봉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이달 들어 15번째 시진핑을 ‘총서기’ 호칭 #미 법무장관과 FBI 국장도 ‘총서기’라 불러 #국가 지도자가 아닌 공산당 지도자 부각중 #시진핑 리더십은 전체주의적 성격도 강조

시진핑은 세 개의 공식 직함을 갖고 있다. 중국 국가주석과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그리고 중국 공산당 총서기 등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대한 미국의 호칭이 ‘주석’에서 ‘총서기’로 점차 바뀌고 있다. 시 주석의 리더십이 전체주의적 성격을 띠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미국의 의도다. 사진은 최근 중국 지린성을 시찰 중인 시진핑 주석.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대한 미국의 호칭이 ‘주석’에서 ‘총서기’로 점차 바뀌고 있다. 시 주석의 리더십이 전체주의적 성격을 띠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미국의 의도다. 사진은 최근 중국 지린성을 시찰 중인 시진핑 주석. [중국 신화망 캡처]

이 세 호칭 중 서방 특히 영어권에선 국가의 수반을 뜻하는 ‘president’로 시 주석을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한데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23일 ‘중국 공산당과 자유 세계의 미래’란 주제의 강연에서 시진핑을 ‘주석’이 아닌 ‘총서기’라고 호칭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25일 보도에 따르면 이날 강연으로 폼페이오 장관이 시 주석을 총서기라고 부른 게 이달 들어서만 벌써 15번째다. 하루가 멀다고 시진핑이 ‘중국 공산당 총서기’라는 사실을 듣는 이들에게 일깨우고 있는 셈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총서기’라 부르고 있다. 중국이란 국가의 지도자가 아니라 중국 공산당 지도자임을 부각하려는 것이다. [뉴시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총서기’라 부르고 있다. 중국이란 국가의 지도자가 아니라 중국 공산당 지도자임을 부각하려는 것이다. [뉴시스]

시진핑을 주석이 아닌 총서기로 바꿔 부르기 시작한 건 폼페이오 장관뿐이 아니다. 미 연방수사국 국장인 크리스토퍼 레이, 미 법무장관 윌리엄 바,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로버트 오브라이언 등도 시진핑을 총서기라고 부른다.

왜 그런가. 미국의 중국 전문가 앨리슨 스잘윈스키는 “매우 고의적인 것”으로, 시진핑이 “대의제 정부의 지도자가 아니고 독재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부의 지도자임을 부각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24일 중국 청두주재 미국 총영사관이 폐쇄 통보를 받은 후 건물에 붙어 있던 총영사관 휘장을 떼어내고 있다. [중국 텅쉰망 캡처]

지난 24일 중국 청두주재 미국 총영사관이 폐쇄 통보를 받은 후 건물에 붙어 있던 총영사관 휘장을 떼어내고 있다. [중국 텅쉰망 캡처]

로빈 클리블랜드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USCC) 의장도 “호칭을 바꾼 데는 시진핑이 선거로 뽑혀 시민 사회의 정치적 지지를 받는, 즉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지도자가 아니라는 ‘단순한’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진핑은 이기적인 당의 꼭대기에 자리 잡은 독재자”라면서 “따라서 용어가 중요하다”고 그는 주장했다. USCC도 연례 보고서에서 시진핑을 더는 ‘주석’이라 하지 않고 ‘총서기’라 쓸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청두주재 미국 총영사관 폐쇄 소식에 이를 환영하는 폭죽을 터뜨렸던 중국인이 지난 24일 현장에서 붙잡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중국 텅쉰망 캡처]

중국의 청두주재 미국 총영사관 폐쇄 소식에 이를 환영하는 폭죽을 터뜨렸던 중국인이 지난 24일 현장에서 붙잡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중국 텅쉰망 캡처]

SCMP에 따르면 미국은 이 같은 시진핑에 대한 호칭 변화를 통해 중국 공산당의 뜻과 중국 인민의 뜻은 서로 다른 것임을 구분하려 한다. 당과 인민을 나누는 것으로, 시진핑이 중국의 합법적인 지배자라는 정통성과 권위를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다.

미국이 노리는 건 결국 시진핑이 공산당의 지도자이지 국가의 지도자가 아니라는 프레임을 짜는 것이다. 또 시진핑의 리더십이란 게 전체주의적 성격을 띤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는 게 SCMP의 분석이다.

지난 24일 3일 내 폐쇄하라는 통보를 받은 중국 청두주재 미국 총영사관이 철수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중국 앙스신문 캡처]

지난 24일 3일 내 폐쇄하라는 통보를 받은 중국 청두주재 미국 총영사관이 철수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중국 앙스신문 캡처]

엘리자베스 이코노미 미 외교협회 중국 전문가는 “총서기란 호칭엔 냉전 시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갖고 있던 부정적인 뜻을 연상케 하는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과의 신냉전을 추구하는 미국으로선 냉전의 기억을 소환하는 효과도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는 또 호칭 변화는 “중국을 중화인민공화국이나 중국 공산당과 분리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며 “미 백악관은 중국 인민을 지지하지, 공산당을 지지하는 게 아니란 인상을 주려 한다”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에 의해 폐쇄 통보를 받은 청두주재 미국 총영사관 앞에 소화기가 놓여 있다. 미국 총영사관에서 문건을 태우다 불이 날 경우를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환구망 캡처]

중국 정부에 의해 폐쇄 통보를 받은 청두주재 미국 총영사관 앞에 소화기가 놓여 있다. 미국 총영사관에서 문건을 태우다 불이 날 경우를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환구망 캡처]

폼페이오 장관은 공산당이 이끄는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호칭 변화도 시도하고 있다. ‘중국’이라 하지 않고 ‘공산당중국’이라 부르는 것이다. 존 울리엇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도 24일 ‘중국’이라 하지 않고 아예 ‘중국공산당’이라고 호칭했다.

아직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시진핑을 공식적으로 ‘총서기’로 부르는데 합류하지는 않았으나 더는 ‘친구’라고 말하지 않는 상황이다.

한데 미국이 시진핑에 대한 호칭을 ‘총서기’로 바꾸는 건 중국이 아닌 서방 세계에서만 효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 시진핑이 공산당 독재의 리더란 점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에 의해 폐쇄 통보를 받은 청두주재 미국 총영사관 앞에 많은 중국인이 몰려와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중국 환구망 캡처]

중국 정부에 의해 폐쇄 통보를 받은 청두주재 미국 총영사관 앞에 많은 중국인이 몰려와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중국 환구망 캡처]

그러나 중국은 별로 개의치 않을 수 있다. 중국에선 권력을 장악한 게 공산당이고 이 공산당의 일인자 자리가 ‘총서기’이기에 ‘총서기’란 호칭은 긍정적으로 쓰인다. 폼페이오가 시진핑을 ‘총서기’로 부르는 데 놀랄 중국인은 많지 않아 보인다는 이야기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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