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할머니 뒷수갑 채운 경찰, 신고자가 현직 경찰관 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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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갑 이미지.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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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이 집주인 허락 없이 이웃집에 들어간 80대 할머니를 주거침입 혐의로 체포했다. 이 과정에서 할머니 등 뒤로 두 손목에 수갑을 채워 '공권력 남용'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에 신고한 집주인이 현직 경찰관이어서 과잉 대응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해당 경찰관들은 할머니가 난동을 부려 이른바 '뒷수갑' 사용이 불가피했다고 한다. 경찰은 감찰에 나섰다.

[이슈추적] #정읍경찰서, 주거침입 80대 여성 체포 #등 뒤로 수갑 채워 '공권력 남용' 논란 #출동 경찰관 "난동 부려 뒷수갑 불가피" #김용빈 변호사 "흉악범도 아닌데 부당" #112 신고 집 주인도 현직 경찰관 #1월 토지 문제로 할머니와 법적 갈등 #경찰 "뒷수갑 사용 적절했는지 감찰"

 25일 전북 정읍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9일 오후 12시 28분께 "외출했던 아내가 집에 오니 이웃집 할머니가 거실에 드러누운 채 나가지 않는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12시 34분께 현장에 출동한 고부파출소 소속 A경위 등 경찰관 2명은 집 거실에 있던 B씨(82·여)에게 "나가 달라"고 요구했다. 경찰에 신고한 집 주인은 고부파출소 인근 치안센터에서 근무하는 C경위였다.

 A경위 등이 설득했지만, B씨는 "못 나간다" "날 잡아 가라" "맘대로 하라" 등 고성을 지르며 집에서 나가는 것을 거부했다. 승강이가 길어지자 A경위 등은 "계속 버티면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그래도 퇴거 명령에 응하지 않자 오후 1시쯤 B씨의 두 팔을 뒤로 젖혀 수갑을 채웠다.

 B씨는 파출소에 도착할 때까지 약 20분간 손목에 수갑을 차고 있었고, 자녀가 온 뒤 석방됐다고 경찰은 전했다. 정읍경찰서는 주거침입 혐의로 B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로고. 뉴스1

경찰 로고. 뉴스1

 이 사건이 알려지자 "경찰관 2명이 80대 할머니에게 뒷수갑을 채운 건 인권 침해"라는 지적이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도주·자살·자해 또는 다른 사람에 대한 위해의 우려가 적은 피의자는 양손을 내민 상태에서 결박하는 '앞수갑'을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경찰청도 '앞수갑' 사용을 원칙으로 한 지침을 만들어 시행해 왔다.

 민변 전북지부 김용빈 변호사는 "과거에는 흉악범 등을 체포할 때 도주와 위해를 막기 위해 뒷수갑을 채웠지만, '헌법이 보장한 신체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인권위의 지속적 권고와 뒷수갑으로 인한 손목 장애 사례가 속출하면서 최근엔 경찰 지침상으로도 뒷수갑을 가급적 채우지 않는 것으로 안다"며 "공무집행방해도 아닌 주거침입 혐의로 여든이 넘은 노인에게 뒷수갑을 채운 건 공권력 남용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A경위 등은 "적법한 절차를 따랐다"는 입장이다. "할머니(B씨)가 난동을 부려 다른 변수가 생길 여지가 있어 안전하게 그 상황을 중단시키고 격리 조치하기 위해 뒷수갑을 채웠다"는 것이다.

 조사 결과 A경위 등이 현장에 도착한 뒤에도 B씨와 C경위는 언쟁을 멈추지 않았다. B씨는 C경위를 향해 "저놈이 나쁜 놈이다" "저놈을 처벌해야 한다"고 소리를 질렀고, C경위는 A경위 등에게 "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한 사람을 왜 안 데려가냐"고 따졌다고 한다.

 A경위 등은 감찰 조사에서 "할머니의 팔을 강제로 꺾지 않았다. 본인이 먼저 팔을 내밀면서 '나를 수갑 채워 데려 가라'고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거실에 드러누운 할머니를 일으켜 세우려고 어깨를 잡으면 소리를 지르며 손을 뿌리치고 다시 누우려고 했다. 할머니가 잘못해서 넘어지면 더 큰 문제가 된다고 보고 부득이 수갑을 사용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돈 이미지. 중앙포토

돈 이미지. 중앙포토

 일각에서는 "80대 노인에게 경찰이 뒷수갑을 채우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후 사정도 살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경찰에 따르면 C경위와 B씨는 수십 년간 한동네에 살며 서로 '누나' '동생'이라 부르며 가깝게 지내던 사이로 알려졌다. 하지만 올 초 토지 등기 이전 문제로 법적 다툼을 하며 두 사람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한다. 과거 B씨 남편으로부터 땅(109㎡)을 산 C경위 부친이 해당 땅을 등기부에 올리지 않은 채 숨지자 땅을 물려받은 C경위가 지난 1월 본인 앞으로 소유권을 옮기면서 갈등이 불거졌다는 것이다.

 뒤늦게 토지 매매 사실을 안 B씨가 "땅을 샀으면 돈을 달라"고 항의했고, C경위는 "아버지 때 이미 땅값 계산은 끝났다"고 맞섰다고 한다. 이에 B씨는 "내 남편을 속이고 땅을 가로챘다"며 경찰에 사기 혐의로 C경위를 고소했다. 전주지검 정읍지청은 지난달 C경위의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반발한 B씨는 이번 사건 전에도 C경위 집을 세 차례 찾아가 항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두 차례는 C경위가 동네 주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B씨를 집 밖으로 내보냈고, 한 번은 B씨가 집 대문을 발로 차고 갔다고 한다. C경위 부인은 B씨가 땅 문제로 남편과 계속 마찰을 빚자 신경 쇠약으로 병원에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C경위 부부가 경찰을 부른 건 그동안 B씨의 도 넘는 행동에도 현직 공무원 신분 때문에 참았던 분노가 폭발했다"는 게 주위 반응이다.

부동산 등기 이미지. [사진 픽사베이]

부동산 등기 이미지. [사진 픽사베이]

 B씨가 '뒷수갑 사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경찰은 감찰에 착수했다. 정읍경찰서 청문감사관실 관계자는 "현장에 나간 A경위 등 2명을 대상으로 뒷수갑 사용이 적절했는지 등을 세밀히 살펴보고 있다"며 "문제가 확인된다면 조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신고자(C경위)는 주거침입의 피해자로 감찰 대상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B씨는 "남편이 C경위 부친에게 받은 건 땅값이 아니라 임대료"라고 주장하며, 최근 C경위를 상대로 토지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측에는 "C경위가 사과하고, 땅을 돌려주면 A경위 등의 뒷수갑 사용은 문제 삼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했다고 한다.

정읍=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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