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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못 가는 아이들, 골프 즐기는 공무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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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최경호 기자 중앙일보 광주총국장
최경호 내셔널 부팀장

최경호 내셔널 부팀장

지난 13일 오후 전남 영암군청 정문 앞. 영암군농민회 소속 농민 10여명이 “A면장을 중징계하라”고 외쳤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영암군 A면장에 대한 징계를 촉구하는 집회였다. A면장은 확진 전 공무원 11명과 골프 라운딩을 했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농민들은 “A면장의 이동 동선은 우려와 충격을 넘어 분노에 이르게 한다”며 “그는 감염 후에도 병원·식당을 방문하고 심지어 골프를 쳤다”고 꼬집었다.

지난 8일 A면장이 확진 판정을 받자 전남 관가가 발칵 뒤집혔다. 영암의 한 골프장에서 A면장을 비롯한 공무원 12명이 무더기로 골프를 친 나흘 뒤여서다. 이날 라운딩에는 영암군청 7명과 전남도청 3명, 광주시청 1명, 보성군청 1명 등이 함께했다.

이들의 행적이 추가로 공개될수록 여론은 나빠졌다. 당시 3개 조로 나눠 골프를 친 이들은 함께 식사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A면장은 평일인 지난 2일에도 같은 골프장에서 유지들과 골프를 친 것까지 밝혀져 공직사회의 체면을 구겼다. 그는 퇴직을 앞두고 자격증을 따기 위해 광주고시학원에서 수업을 듣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

공무원의 골프 금지령을 내린 김영록 전남지사. 프리랜서 장정필

공무원의 골프 금지령을 내린 김영록 전남지사. 프리랜서 장정필

그나마 A면장을 제외하곤 코로나19 검사에서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후유증은 가시지 않았다. 영암군청은 물론이고 전남도청 일부 부서와 면사무소 3곳 등이 폐쇄되고 직원들은 죄다 격리됐다.

여론이 들끓자 이들이 소속된 지방자치단체에 비상이 걸렸다. 전남도는 지난 14일 A씨와 골프를 친 도청 팀장급 공무원 3명을 전원 직위해제했다. 앞서 지난 13일에는 영암군청 공무원 7명 전원이 직위해제됐다. 이들은 조만간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최종 징계 수위가 결정된다.

지역민들은 이들의 행동을 놓고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이다. 단체 골프를 한 시점이 인근 광주에서 무서운 속도로 코로나19가 재확산되던 상황이어서다. 광주에서는 지난달 27일 재확산 후 19일 동안 137명이 추가 확진을 받았다. 코로나19 발생 후 넉달여간 광주의 총 확진자(33명)의 네 배가 넘는 규모다.

급기야 광주시는 지난 3일 전국 지자체 최초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2단계로 상향 조정했다. 광주시청과 광주시교육청 등의 공무원들에게는 “퇴근 후 외출을 자제하라”는 지시도 내려졌다. 여기에 전남도가 골프 사건 후 강화된 공직기강 특별지시를 내리자 “이제 공무원들은 골프 다 쳤네”라는 말까지 나돈다.

하지만 지역 관가를 지켜보는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학생들은 학교조차 마음 놓고 못 다니는데 공무원들은 라운딩을 즐긴 사실이 적잖은 생채기를 남겨서다. 코로나19라는 엄정한 시국에 단체로 골프를 친 공무원들에게 어떤 처방이 내려질지 지켜볼 일이다.

최경호 내셔널 부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