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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시장'에 맡겨진 유전자

중앙일보

입력

과학기술 투자에 인색한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동화 한토막.

옛날 원숭이들만 어울려 사는 나라가 있었단다.이곳에 손재주 좋은 너구리 아줌마가 이사를 왔다.

너구리는 솜씨를 발휘해 원숭이들에게 꽃신을 만들어 나눠줬다.꽃신은 모양도 예쁘거니와 발을 편하게 했다.무엇보다 원숭이들의 매력을 끄는 것은 꽃신이 공짜라는 사실이었다.

원숭이들은 신발이 떨어지면 너구리 아줌마에게 달려갔다.그리고 새 꽃신을 받아 들고는 꽥꽥거리며 좋아했다.그러나 그런 즐거움도 잠시,너구리 아줌마는 꽃신을 주는 대가로 도토리를 받기 시작했다.

처음 원숭이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한 웅큼의 도토리면 꽃신 한 켤레를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얼마 가지않아 꽃신 값은 도토리 한 되에서 한 말로,그리고 어느덧 한 가마니로 치솟았다.원숭이들은 너무 화가 나 꽃신을 벗어버리려고 했다.하지만 신발에 길 들여진 발은 금새 부르트고 아파왔다.

본색을 드러낸 너구리 아줌마는 도토리에 만족하지 않았다.업어주고,먹여주고,입혀주기를 강요했다.원숭이들은 불쌍하게도,아름다운 꽃신을 만들지 못하는 자신들의 무능함을 탓하며 평생 너구리 아줌마의 종노릇을 했단다.

언젠가 무심코 읽었던 동화가 인간지놈지도 완성 발표를 보고 생각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미국·영국 등 6개국 국제컨소시엄과 미국의 대표적인 바이오벤처인 셀레라 지노믹스는 그들이 막대한 연구비를 투자한 지놈지도를 ‘공짜’로 공개한다고 발표했다.동전 한닢 기여하지 못한 나라들에겐 ‘눈물겹도록 고마운’처사가 아닐 수 없다.하지만 이를 한꺼풀 뒤집어보자.

지놈지도는 무료지만 기능성 유전자는 엄연히 특허대상이다.예컨대 듀크대학이 가지고 있는 알츠하이머 유전자 특허와 존스홉킨스대학이 보유한 결장암 특허를 이용하려면 그들이 요구하는 돈을 내야한다.셀레라사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유전자정보 이용료를 받겠다고 선언했다.그들이 올해 거둬드릴 돈은 얼추 1억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선진국들은 몇 년전부터 비만·간질·고혈압·천식·각종 암 등 주요질환과 관련된 유전자 특허를 착실하게 등록하고 있다.99년 이미 1천8백여건의 인간유전자 특허를 승인받았고,준비 중인 것이 7천여건이라고 했다.전문가들은 지놈 특허 관련한 매출이 수조달러의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리라는 예측도 한다.

미국의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유전자를 이용한 산업이 컴퓨터 기술 발전사와 유사함을 지적한다.처음 정부지원으로 군사목적에 이용되던 컴퓨터 기술이 민간산업으로 전환되자 부의 창출을 위한 피나는 경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단기간에 이익을 실현하려는 생명공학회사들에게 DNA는 더이상 인류의 공동재산이 아니다.시장원리에 맡겨진 유전자는 상품일 뿐이다.

금 1㎏의 가격을 1로 봤을 때 256메가디램은 14,의약품 인터페론은 3백57의 가치를 지닌다는 보고도 있다.생명산업은 자본집약적이고 노동집약적인 기존 산업과 달리 엄청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첨단산업이라는 얘기다.

DNA정보와 이를 이용한 기술은 곧 돈이다.이미 기술과 정보의 종속관계가 시작된 것은 아닐까 두려움이 앞선다.

정부는 21세기 첫해인 올해를 바이오코리아 원년으로 삼아 생명공학 연구개발투자로 3천2백38억원을 투입한다고 발표했다.뒤늦게 틈새시장이라도 잡아야겠다는 초조함이 배어있는 것 같아 왠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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