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와 기억장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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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있어서의 기억장애와 건망증의 차이

현대와 같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알아두어야 할 일도 많고, 이런 기억들을 적절히 끄집어 내서 활용해야 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필자의 경우도 환자분의 이름은 기억이 나는데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 혹은 그 반대의 경우가 있어 상당히 곤혹스러운 순간이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건망증은 망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건망증은 어떤 특정한 사물에 대해서 선택적일 수도 있고, 어떤 특정한 시기에 일어났던 일을 잊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또는 자신이 경험했던 어떤 사건에 대해서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기억이란 우리 인간의 정신활동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구성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억과정은 어떤 개체가 정신활동에 필요한 정보를 받아 들여서 뇌 속에 기록하고 필요한 기간 동안 저장하였다가 이를 다시 끄집어 내서 사용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아침에 면도를 하고 난 후에 면도기를 어디에 두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거나, 은행 예금 통장을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경우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실제 임상상황하에서 조금 전에 일어났던 일을 기억 못하는 일이 전과 같지 않게 자주 일어나서 혹시 치매가 아닌가 불안해서 병원을 찾아오시는 환자분들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치매에 있어서의 기억력 상실과 건망증의 근본적 차이는 하나는 병이고 다른 하나는 정상 노화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치매는 뇌 세포에 고장이 생긴 분명한 질병이고, 건망증은 나이가 많아짐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정상적으로 자연스러운 하나의 현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임상적으로 볼 때 건망증은 자신이 어떤 기억이 상실되었음을 잘 알지만, 치매 환자는 자신의 기억력이 상실되었음을 알지 못합니다. 치매와 건망증을 초기에는 구별하기가 대단히 어렵지만, 치매에 있어서의 기억은 과거에 자신이 경험하였거나,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을 전반적으로 광범위하게 모두 잊어 버리는 특징이 있으나, 건망증은 기억된 것의 일부를 선택적으로 잊어버리는 것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치매는 시간, 장소, 사람에 대한 기억으로 설명되는 지남력과 판단력의 전반적인 장애를 일으키지만, 건망증은 지남력과 판단력은 대부분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일반인들이 자신의 기억력이 나빠졌다고 느끼면서 혹시 치매가 아닌가 하고 불안해 하지만, 실제로는 단순한 건망증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괴로운 일을 굳이 기억해내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기억은 아마 쉽게 사라지게 하려는 무의식적인 욕구가 작용할 것입니다.

임상에서 건망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특징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첫째로 대부분이 복잡하고 바쁜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사업을 하면서 이곳저곳을 뛰어 다녀야하고, 집에서는 앞으로 닥쳐올 집안일, 아이들 공부 등등 어지러울 정도로 바쁘게 생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일들에만 너무 집착해 있기 때문에 다른 일에는 주의력이 감퇴되거나 산만해집니다.

둘째로 완벽하거나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기억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아 결국은 주의집중력이 저하되어 어떤 일이나 사건에 대해서 쉽게 잊어버리게 됩니다.

셋째로 심리적으로 갈등이 많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면, 시어머니와의 불편한 관계에 있는 며느리가 시어머니와의 약속을 잊어버린다든지 또는 부모님이 강요하는 맞선을 보러 나가는 여자가 약속장소를 잊어버려 난리가 난다든지 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개인의 의식적인 또는 무의식적인 갈등이 괴로운 상황을 기억해내지 않으려는 일종의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자주 잊어버리는 증상을 완화시키려면 어떤 방법이 필요한가 하는 방법 이전에 건망증을 무조건 병적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뇌는 20세가 넘어서면 서서히 기능이 떨어지므로 가는 세월 탓에 저장된 정보 중에서 필요없는 일이나 사건에 대해 잊어버리는 것은 조금도 우려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건망증이 생활에 불편을 줄 정도라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우선 자신의 생활을 간단하고 단순하게 바꾸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늘 일도 불분명한데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해서 너무 집찾하고 애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복잡함이 건망증을 잘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심리적인 갈등이나 정서적인 불안을 초래하는 일이 있다면, 이를 적절히 다루어서 마음의 갈등을 없애는 것이 도움이 되며, 필요하다면 가족이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마음의 평온을 찾는 일이 중요합니다. 또한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예전보다 건망증이 심해졌다고 느끼는 경우에는 적절한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일이 권장됩니다. 예를 들면, 자신이 과거에 했었던 일이나 취미 또는 독서 등을 활용하여 두뇌에 어느 정도의 자극을 주는 일이 도움이 됩니다. 또한 술이나 담배 등의 기호품은 기억력을 저하시키므로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기억력이 전과 달라졌다고 해서 전부 치매가 아니므로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으나, 이를 너무 무시해서 적절한 진료를 받을 기회를 놓치는 것도 안됩니다. 치매에 있어서 기억력 상실은 뇌세포의 기능 변화로 인한 하나의 질병이기 때문에 이는 반드시 전문의사의 자세한 진단이 필요하고, 적절한 치료가 병의 진행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며, 조기 치료의 기회를 지나침으로서의 병의 진행을 막거나 적절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함을 마지막으로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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