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지지해서 퇴출? 인권위도 놀란 ‘게임업계 여성혐오’

중앙일보

입력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게임업계의 페미니스트 작가 논란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여성 차별과 혐오 실태가 위험 수준에 달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위는 8일 “일부 여성 작가가 페미니즘 관련 글을 공유하거나 지지했다는 이유로 온라인상에서 다수의 게임 이용자에게 혐오 표현의 대상이 됐다”고 밝혔다.

"페미미즘 지지했다고 계약 끊겨"   

인권위와 게임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 3월 국산 인디게임 ‘크로노 아크’의 스킬 일러스트 작가 A씨는 자신의 SNS에 페미니즘 관련 기사를 공유했다는 이유로 계약이 끊겼다. A씨는 지난해 11월 트위터 계정에 ‘여성살해 멈춰라-프랑스 물들인 보랏빛 행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공유했다. 또 한 게임 커뮤니티 카페에는 ‘회사 페미 근절’이라는 제목으로 ‘리스크를 감수하고 싶지 않아 숏컷 여성 지원자는 조용히 불합격 처리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을 쓴 사람은  “확실히 회사 쪽에선 괜히 폭탄 하나 들고 있고 싶지는 않으니. 게임회사들 일러스트 (작가) 교체한 것 보면”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5월 30일 한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네이버 카페 캡쳐]

지난 5월 30일 한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네이버 카페 캡쳐]

인권위 "게임업계에 여성혐오 문화 존재" 

인권위는 이같은 "일부 게임업계의 여성 작가 기피 현상은 ‘게임업계 내 혐오 및 차별’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게임 산업이 소위 '남초 산업'이라 불리는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행한 「2019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18년 게임산업 종사자 성비는 남성이 70.1%, 여성이 29.9%를 차지했다. 인권위는 이런 분위기에서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게임업계 여성 종사자에 대한 괴롭힘과 불매운동을 벌이는 ‘메갈 사냥’이 이뤄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관련 게임업체 측은 인권위에 “사용자들의 요구와 반응을 반영해 서비스를 제공한 것일 뿐 피해자들의 개인적인 신념이나 사상,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차별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주요 고객의 요구를 외면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실제로 한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에선 ‘페미 게임으로 낙인 찍히면 게임 홍보에는 지장이 생긴다’는 는 식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지난해 6월, 한 온라인 게임 카페에 올라온 글. [네이버 카페 캡쳐]

지난해 6월, 한 온라인 게임 카페에 올라온 글. [네이버 카페 캡쳐]

"게임업체가 인권 무시 소비자 설득해야"   

인권위는 업체 측 주장에 대해 “기업도 사회의 일원이고 기업의 이윤 또한 사회로부터 창출하는 것임을 고려할 때 소비자의 요구가 인권ㆍ정의와 같은 기본적 가치에서 이반된 것이면 무시하거나 소비자를 설득하는 것이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라며 “기업의 인권존중 의무에 따라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모범적 기업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인권위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 진흥원에도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제작 지원 업체 선정 시 기준 개선 등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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