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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그린 뉴딜” 외친 날 석탄발전 승인한 정부의 자가당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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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상훈 그린피스 기후·참정권 캠페인 팀장

정상훈 그린피스 기후·참정권 캠페인 팀장

어딜 가나 ‘그린 뉴딜’이 화두다. 정부는 코로나19 위기 극복 전략으로 그린 뉴딜을 제시했는데, 기후 위기에 대응하며 친환경 고용까지 늘린다는 의의를 담고 있다. 그런데 최근 정부의 행보를 보면 과연 이런 그린 뉴딜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MB 녹색성장 실패 반복 안 하려면 #종합계획에 기후위기 비전 넣어야

문재인 대통령은 6월30일 유럽연합(EU) 새 지도부와 화상으로 정상회담을 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그린 뉴딜 정책의 주요 파트너가 되길 기대한다”며 EU에 손을 내밀었다. 유럽은 ‘그린 딜’을 통해 글로벌 기후 환경 문제를 주도하고 있다. 양측은 파리협약의 완전하고 신속한 이행을 위한 강한 의지까지 강조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그린 뉴딜 협력을 거론한 바로 그 날 오전 한국전력은 인도네시아 자와 9, 10호기 석탄화력발전소 투자 사업을 인가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석탄은 단일 요소로는 지구 온난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 가장 먼저 퇴출해야 하는 에너지원이다. 정부 산하 공기업이 그린 뉴딜의 철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석탄 사업 승인을 내준 것이다.

그린 뉴딜은 기후 변화 대응과 경제 위기 극복, 불평등 해소라는 큰 그림 아래 탄생했다. 그래서 유럽은 그린 딜을 통해 이산화탄소 순 배출을 제로(0)로 만들어 최초의 탄소 중립 대륙이 되겠다는 목표를 전면에 내세웠다.

또한 그린 딜 추진을 위해 향후 10년간 최소 1조 유로(약 1350조 원)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관련 정책은 에너지·수송·산업 등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 필요한 광범위한 분야를 포괄한다.

그런데 한국형 그린 뉴딜은 어떠한가. 정부가 지난 6월 초에 밝힌 그린 뉴딜 재원은 2025년까지 향후 5년간 27조원에 불과하다. 미국 대선 유력 후보로 꼽히는 조 바이든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향후 10년간 1조7000억 달러(약 2000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공약했다. 유럽·미국 어느 쪽과 비교해도 한국 정부의 그린 뉴딜 재원은 극히 적다.

더 본질적 문제는 따로 있다. 정부는 그린 뉴딜을 거론하면서 ‘2050년 탄소 순 배출 제로’라는 기본적인 목표조차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린 뉴딜을 표방하며 석탄 투자를 인가하는 자기모순은 여기서 비롯된다. 이쯤 되면 정부의 그린 뉴딜에 기후 위기를 진정으로 막기 위한 비전과 목표가 들어 있는지 의문이 든다.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7위다. 호주 산불, 러시아 동토층 붕괴, 감염병 확산 등 기후 위기는 이미 시작됐고 갈수록 더 악화할 것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기후 위기를 막지 못한다면 완전한 재앙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위험을 실감한 한국 청소년들은 정부를 상대로 기후 위기 대응을 요구하는 법정 소송을 하고 있다. 기후 위기로 인해 자신들의 생존권이 큰 위협에 처했음을 알리기 위해서다. 지난 6월 226개 시·군·구가 참여해 ‘기후 위기 비상 선언’을 선포했다. 그린 뉴딜을 유행어처럼 반복하는 중앙 정부만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듯하다.

이명박 정부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고 경제 성장을 이루겠다며 녹색성장 계획을 추진했다. 그러나 실제 집권 기간 온실가스 배출은 매년 증가했다. 2009~2010년 온실가스는 10% 이상 급증했다.

문재인 정부의 그린 뉴딜을 속단하기 이르다. 오는 13일 발표 예정인 ‘그린 뉴딜 종합 계획’에 기후 위기를 막겠다는 비전과 로드맵이 명확히 포함되는지를 보면 판가름날 것이다.

정부는 그린 뉴딜 파트너인 EU의 그린 딜에 담긴 비전이 무엇인지 유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린 뉴딜은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을 재탕하면서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상훈 그린피스 기후참정권 캠페인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