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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빈 애" "배신한 애" 주장이 말하면 그곳에선 법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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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김규봉 감독(왼쪽)과 주장인 장모선수, 김모 선수가 6일 오전 국회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 최숙현 선수 사망 사건과 관련 회의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김규봉 감독(왼쪽)과 주장인 장모선수, 김모 선수가 6일 오전 국회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 최숙현 선수 사망 사건과 관련 회의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특정 선수를 지목해 안좋은 소문을 퍼뜨리라고 했어요.”

고 최숙현 선수사 속해있던 경주시청 철인3종경기(트라이애슬론)팀에서 5년 전 남자팀 주장을 맡았던 A씨의 말이다. A씨는 8일 본지와 통화에서 “여자팀 주장인 장 선수는 이미 다른 팀으로 옮긴 나에게 경주시청팀 후배들 욕을 자주 쏟아냈다”고 말했다. 최 선수의 동료들도 지난 6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팀 최고참인 주장 장 선수는 항상 선수들을 이간질하고 따돌리며 선수들을 지옥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며 “경주시청 철인3종경기팀은 감독과 특정 선수만의 왕국이었다”고 밝혔다. 주장을 맡아온 장 선수는 어떻게 경주시청팀을 ‘자신만의 왕국’으로 만들었을까.

①이간질-“‘돈 따라간 애’라고 소문내"

최숙현 선수가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글. [네이버 캡쳐]

최숙현 선수가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글. [네이버 캡쳐]

A 선수는 “장 선수가 지난해 10월쯤 팀을 옮긴 한 선수를 두고 ‘우리를 배신하고 돈 보고 다른 팀 따라간 애’라고 퍼뜨리라고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선수를 두고는 ‘머리가 비고 생각이 없는 X’이라는 소문을 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장 선수가 최 선수를 두고는 정신병자라고 했다”며 “다른 팀에 소속된 나에게 자주 전화해 경주시청팀 후배들 욕을 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동료 선수는 “주장 선수는 최 선수가 남자를 많이 만난다는 식의 소문을 만들었다”라고도 했다. 지난해 3월 최 선수가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네이버 지식인’ 질문엔 “운동선수인데 팀에서 폭언·폭행, 사실이 아닌 소문으로 힘들다”는 내용이 담겼다.

②따돌림-“왕따시켰다 잘해줬다 반복하며 길들여”

최숙현 선수가 지난해 3월 남긴 일기. [최 선수 가족 제공]

최숙현 선수가 지난해 3월 남긴 일기. [최 선수 가족 제공]

장 선수는 팀 내 선수들을 돌아가면서 따돌리기도 했다. 경주시청 철인3종경기팀에 약 2년간 몸담았던 B선수는 “장 선수는 시기별로 팀 내 한명씩 왕따를 시켰고, 그 선수와는 아예 말도 못 섞게 했다”고 말했다. 이 선수는 “주장인 장 선수는 이 팀에도 워낙 오래 있었고, 실력도 국내랭킹 1위라 저항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C선수는 “경주시청팀은 외부에 ‘장 선수팀’으로 알려질 정도로 해당 선수의 영향력이 컸다”고 했다. 그는 “장 선수가 같은 팀 선수를 왕따시키는 패턴이 매년 똑같이 반복됐다”며 “시즌이 시작되기 전엔 재계약을 위해 잘해주다가, 계약을 맺은 후 왕따를 시키고 폭언을 했다”고 말했다.

경북체육고등학교 2016학년도 졸업앨범에 실린 고(故) 최숙현 선수의 한 마디. '흙길 그만 걷고 꽃길만 걷자'라고 적혀 있다. [최 선수 유족 제공]

경북체육고등학교 2016학년도 졸업앨범에 실린 고(故) 최숙현 선수의 한 마디. '흙길 그만 걷고 꽃길만 걷자'라고 적혀 있다. [최 선수 유족 제공]

그는 “사막에서 일부러 물을 안 주고 사람의 목을 마르게 하는 것처럼 일주일에서 한 달 동안 특정 선수를 왕따시키고, 이후엔 언제 그랬냐는 듯 잘해줬다”며 “이런 일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후배를 길들였다”고 말했다. 그는 “지켜보는 선수들도 이 상황이 잘못됐다는 건 알지만, 장 선수한테 찍혀 왕따를 당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니까, 선뜻 그의 행동을 제지할수 없었다”고 했다.

최 선수의 일기장에도 팀 내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정황이 담겼다. 최 선수는 지난해 3월 일기장에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티를 미친 듯이 낸다. 000은 후배인데 나를 무시하고, XXX는 내가 뭘 주면 본 척도 안 한다. 장 모 선수도 똑같다. 사람을 어떻게 저렇게 무시하지’라고 적었다.

③배신자-“팀 나가면 배신자 낙인 찍어"

최숙현선수 가혹행위 가해자로 지목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팀 전 주장인 장 모 선수가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 회의에 출석하고 있다.뉴스1

최숙현선수 가혹행위 가해자로 지목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팀 전 주장인 장 모 선수가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 회의에 출석하고 있다.뉴스1

장 선수는 팀을 이적하는 선수들을 ‘배신자’로 낙인찍어 선수들이 팀을 벗어날 수 없도록 하기도 했다. A선수는 “팀을 나가면 배신자라고 세뇌해 다른 팀으로 못 가도록 했다”며 “스무살 정도 된 어린 선수들은 실업팀 문화가 원래 이런 줄 알았다”고 전했다.

B선수는 팀을 나가면 고소하겠다는 협박도 받았다. 그는 “지난해부터 최 선수랑 같이 감독 등을 고소하기 위해 증거를 모으고 있었는데, 장 선수가 그 소문을 들었고 지난해 10월쯤 내가 팀을 옮기겠다고 하니 팀을 나가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위협했다”고 말했다.

동료들의 증언과 관련해 장 선수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장 선수는 혐의를 줄곧 부인하고 있다. 장 선수는 지난 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상임위에 출석해 “폭행한 적은 없다. 같이 지내온 시간은 마음 아프지만 조사에 성실히 임했다”고 말했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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