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DDVP 살충제 파문

중앙일보

입력

2000년 7월 하순. 군 첩보계통을 통해 국방부 조달본부에 긴급 보고가 날아들었다.

"해병대 사령부의 사병들이 구토를 하고, 극심한 두통으로 고생하고 있다. 즉각 조치해 주기 바란다" 는 내용이었다. 일부 사병들은 심한 알레르기 증세를 보였다.

사안의 심각성을 알아챈 조달본부 관계자들이 현장으로 달려가 우선 의심이 가는 살충제를 수거했다.

8월 초 국방품질관리소는 식품의약품안전청에 검사를 의뢰했다. 최종 결과는 5개월이 다 된 지난해 12월 말에야 나왔다. 군 부대에서 사용한 살충제에서 '고도 독성물질' (독성물질 중에서 강도가 가장 센 것) 인 디클로르보스(DDVP) 가 기준치(0.3%) 보다 훨씬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 허술한 검사과정.군납시스템〓이번에 밝혀진 것처럼 독성물질이 들어간 의약품마저 국방품질관리소에서 별도의 검사를 하지 않는다.

납품업체가 지정되고 난 후 업체가 있는 지방보건환경연구원 등에서 발행하는 시험성적서를 첨부하기만 하면 납품을 허가한다.

식의약청의 정밀검사 결과 디클로르보스가 허용기준보다 훨씬 높은 1백27% 검출돼 '부적합' 판정이 내려진 동일제품에 대해 1999년 8월 충북보건환경연구원은 1백7. 7%로 '합격' 판정을 내렸다.

이 연구원은 충북 지역에서 식의약청의 검사업무를 대행하는 기관이다.
식품의약 안전업무를 담당하는 기관 사이에 검사 결과가 상반되게 나온 것이다.

국방품질관리소측은 "88년까지는 군납품을 전품 검사했으나 전문인력이 부족하고 효율성을 감안해 의약품의 경우 자체검사를 생략한다" 고 말했다.

즉 디클로르보스 같은 맹독성 물질이 들어간 살충제도 자동차 등의 공산품과 같은 '단순검사 1형' 으로 분류해 외부기관의 검사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얘기다.

또 일단 납품된 이후에는 별도의 현장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 문제가 드러난 이후에나 사후처방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번 경우도 지난해 7월에 문제가 된 제품의 검사결과가 다섯달이 지난 뒤에야 나오는 바람에 그동안 군에서 쓴 제품에 대한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검사 과정에서 식의약청의 행정 난맥상도 드러났다. 식의약청이 99년 4월 K제약으로부터 살충제 제조신고를 받으면서 고시기준(0.3%) 의 배에 가까운 0.53%로 잘못 신고한 것을 그대로 접수해 사고가 난 뒤에야 당시의 실수를 수정하는 일이 빚어지기도 했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김홍신(金洪信) 의원은 "환경부 고시는 DDVP가 0.1%만 들어가도 발암 가능성이 있는 맹독성 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며 "식의약청이 가정에서 쓰는 살충제의 DDVP 한도를 0.3%까지 허용한 것은 아무리 약효를 고려해도 지나친 것" 이라고 지적했다.

◇ DDVP 살충제 계속 써도 되나〓전문가들은 가정용 내지 실내용 살충제에 DDVP를 사용하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DDVP가 함유된 살충제는 '의약품' 으로 분류돼 약국에서만 살 수 있지만 지난해 7월 약사법이 개정되면서 의약품과 의약부외품이 통합돼 오는 7월부터는 슈퍼마켓에서도 쉽게 살 수 있게 됐다.

이와 관련해 인천대 생물학과 홍한기 교수는 "독성 성분에 대한 경각심을 주는 경고문을 반드시 붙여야 한다" 고 강조했다.

그러나 제약회사들은 "DDVP가 다른 원재료에 비해 원가가 5분의 1밖에 되지 않아 많이 사용하는 편" 이라고 말했다.

시판되는 살충제는 DDVP가 함유된 것은 5백㎖짜리를 기준으로 1천2백~1천5백원, 피레스로이드 등 독성이 이보다 덜한 원료를 쓴 것은 2천~3천원이다.

지난해 DDVP계 살충제는 2천만개가 팔려 시장점유율이 67%였다.

고신대 이동규 교수는 "DDVP는 일종의 신경마비제이며, 뛰어난 효능 때문에 널리 쓰이고 있지만 지나치게 많이 쓰면 사망할 수도 있는 맹독성 물질" 이라며 "약효가 좋으면서 독성이 낮은 퍼머스린과 같은 원료를 써야 한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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