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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타 조종사노조 "이상직 의원과 딸 배임혐의 고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M&A)을 추진중인 이스타항공 상황이 갈수록 꼬이고 있다. 창업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일가가 이스타홀딩스를 통해 보유한 이스타항공 지분 39.6%를 포기한다는 내용을 29일 이스타항공 측을 통해 밝혔다. 하지만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조종사 노조)는 "꼬리 자르기"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급기야 조종사 노조는 이번주 내로 이상직 의원과 딸 이수지 이스타홀딩스 대표를 업무상 횡령과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중앙일보 30일 경제 1면
반면 근로자대표 측은 이를 환영한다는 입장이라 노노갈등 상황까지 드러나고 있다.

이런 갈등은 이 의원 지분 포기 방침을 밝힌 기자간담회 장소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스타항공 근로자대표는 이날 사측의 제안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한철우 이스타항공 근로자대표는 “근로자대표 일동은 이스타항공 대주주의 통 큰 결정에 감사한다”며 “제주항공은 속히 협상 테이블에 나오라”고 요구했다.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가 본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가 본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조종사 노조)은 기자간담회에서 근로자대표가 발언하자 한 조종사 노조원은 근로자대표의 실명을 거론하며 “너, 내가 조심하라고 했지?”라고 호통쳤다. 일부 노조원은 기자회견 막판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에게 욕설하면서 격한 반응을 보였다.

직할·영업운송·정비·객실·운항 등 부문별 대표자 5인으로 구성한 근로자대표는 이스타항공 근로자 1600여명이 3월 말 투표로 선정했다. 당시 근로자 70% 이상이 근로자대표 선정에 동의했다는 것이 이스타항공의 설명이다.

이와 대립하고 있는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는 기장·부기장 등 220여명의 운항승무원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단체다. 2017년 설립했고, 지난 4월 22일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이스타항공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사측 지지 의사를 밝힌 근로자 대표(왼쪽 세명). 연합뉴스

이스타항공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사측 지지 의사를 밝힌 근로자 대표(왼쪽 세명). 연합뉴스

근로자대표 “노사 2인3각으로 제주항공 설득”

근로자대표가 사 측의 입장에 동조하는 건 결국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을 인수하는 것이 유일한 생존 방안이라고 판단해서다. 이들은 이스타항공 노사가 ‘2인3각’으로 움직여야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것으로 본다. 29일 창업주 일가가 이스타항공 지분을 포기한 행위도 제주항공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줄 것으로 봤다. M&A 성사 이후 창업주가 이스타항공 경영에 간섭할 여지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조종사 노조는 사측의 발표가 일종의 ‘꼬리 자르기’였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이상직 의원 일가가 자신에게 쏠린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이날 기자 간담회를 개최했다고 의심한다. 어차피 M&A 계약이 성사하지 않으면 이스타홀딩스 대주주는 매각대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창업주 일가가 지분을 포기하는 행위는 도의적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를 내포한다는 주장이다.

또 창업주의 지분 포기는 오히려 M&A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 창업주 주식 헌납이 M&A 계약상 매각 주체를 모호하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박이삼 조종사노조 위원장은 “주식 헌납 이외에 (양사 M&A 성사를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사측이) 제시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예컨대 태국 현지 총판 타이이스타젯이 항공기를 임차하는 과정에서 이스타항공이 채무(3100만달러·373억원)를 지급보증한 사안 등에 대해서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 이스타항공 본사 앞에서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서구 이스타항공 본사 앞에서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조종사 노조, 임금체불 소송도 제기

의견 표출 방식도 상이하다. 이스타항공 근로자 대표단은 “대다수 직원은 당장의 강경한 투쟁보다 정상적이고 빠른 인수 성사로 인한 안정적인 미래를 원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조종사 노조는 “투쟁해서 권리를 쟁취하자”는 의견이 대체로 앞선다. 15일(청와대)·18일(더불어민주당 당사)·19일(민주당 전북도당 당사) 연이어 집회를 열었고 지난 4월엔 임금체불 소송을 제기했다.

장기간 임금 체불 사태도 두 단체간 갈등에 불을 지폈다. 제주항공이 M&A 선결 조건 중 하나로 ‘체불임금 해결’을 요구하자, 사측은 지난 5월 27일 근로자들이 체불임금을 포기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김포공항 국내선 계류장에 이스타항공 항공기가 서 있다. 뉴스1

김포공항 국내선 계류장에 이스타항공 항공기가 서 있다. 뉴스1

이 과정에서 근로자대표는 사측 주장을 검토하다가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이에 비해 조종사 노조는 처음부터 ‘절대 불가’를 외쳤다. 결국 양측 모두 사측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지만, 이 과정에서 이스타항공 근로자 여론이 양분하면서 갈등이 고조했다. 이스타항공 직원들은 지난 2월 급여의 40%만 받았고, 3월부터는 아예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편 이스타항공 대주주 일가가 지분 포기 의사를 밝혔지만 M&A 성사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스타홀딩스 대주주의 29일 발표에 대해서 애경그룹과 제주항공 측은 “M&A를 논의할 상대방이 없어진 이상하고 당황스러운 상황”이라며 "진의를 파악 중"이라는 입장이다. 제주항공이 7월 중 인수 여부를 밝히지 않으면 이스타항공은 파산이 유력하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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