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학교' 연 세브란스 김병길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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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가운을 입은 의사나 간호사가 밤낮 주사나 놓고 피나 뽑아가지고는 어린이들에게 병을 극복하려는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겠어요? 성장기의 어린이 만성환자는 질병 치료와 더불어 미술.음악 교육 등을 병행하는 심리요법이 중요합니다. '토털 캐어(total care) ' 가 필요한 거죠. "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장기투병 중인 어린이 환자를 위해 지난 11일 '어린이 병원학교' 를 연 연세대 의대 김병길(金炳吉.63.소아과) 교수.

병원학교는 올해 초 金교수의 제안으로 개설 준비에 들어가 지난 6월부터 석달간 시범운영을 거쳐 설립됐다.

53병동에 위치한 이 학교는 10여평의 작은 공간에 마련됐지만 소아암.백혈병.만성 신장질환 등을 앓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아픔을 이겨내며 공부할 수 있는 '꿈의 학교' 다.

아이들은 짜여진 시간표에 따라 영어회화.음악.미술.종이접기.율동 등 관심있는 과목뿐 아니라 현직 초등학교 교사가 가르치는 교과수업도 받을 수 있다.

특히 연대 간호대 아동간호학교실(주임교수 柳一榮) 은 초등학교 교재를 이용해 학교교육과 연결된 개인별 지도를 맡기로 했다.

"연말이면 어린이 환자를 위한 공연이나 연극 등의 이벤트가 많이 열립니다. 그 자체도 의미는 있지만 단발성 이벤트로는 병원에 있는 게 스트레스 그 자체인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못됩니다. 또래의 동료 환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통해 '빨리 이겨내 뛰어 놀아야지' 라는 의지를 북돋아줘야죠. " 병원학교는 뜻을 같이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의료계 파업으로 손실이 커진 병원에 예산 지원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간호사 한 명이 TV를 기증했고 여러 단체의 도움으로 컴퓨터 등 학습 도구를 마련할 수 있었다.

또 코미디언 이용식씨가 명예교사를 자청했고 연대생과 초등학교 교사 등 자원봉사자들이 무보수로 아이들의 교육을 맡기로 했다.

이화여대 사회복지관 자원봉사자들과 연대 학군단(ROTC) 도 자원봉사자로 참가한다.

"원래 9월 개교 예정이었는데 의료계 파업때문에 연기됐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빨리 문을 열라고 얼마나 성화를 부리던지…. 부모들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보니 의사라는 직업에 보람이 느껴집디다. 의료계 파업으로 깨어진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

金교수는 1961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 의대 등을 거쳐 세브란스병원에서 31년째 소아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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