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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현장 달려온 3819명의 땀, 체계적 보상시스템 아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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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포스트코로나 대변혁이 온다 ③ 한국식 공공성 실험

대구동산병원에서 격리병동 청소를 위해 보호복을 입은 병원 미화팀 관계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뉴스1]

대구동산병원에서 격리병동 청소를 위해 보호복을 입은 병원 미화팀 관계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뉴스1]

3819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뒤 방역의 최전선에 뛰어든 자원 의료인력(1일 누적 기준)이다. 의사(1790명)와 간호사·간호조무사(1563명), 임상병리사 등 기타 인력(466명) 순으로 직군을 가리지 않았다.

코로나 터지자 민간에서 공공역할 #개인·기업도 자발적 기부 동참 #단순한 선의에만 계속 기댄다면 #제2 유행 왔을 때 극복 장담 못 해

마스크·고글에 깊게 파인 얼굴이 상징이 된 의료진은 ‘K-방역’의 주역이다. 지난 2월 대규모 유행이 몰려온 대구·경북 지역은 이들 덕분에 버텨낼 수 있었다. 한때 수백 명씩 쏟아졌던 대구·경북의 일일 확진자는 ‘0명’ 가까이로 떨어졌다.

병원 등 각자의 일터에서 일하던 의료진들은 생업을 뒤로한 채 뛰어들었다. 민간 병원인 대구동산병원은 3개월 넘게 감염병 전담 병원으로 탈바꿈했다. 코로나가 아닌 일반 환자는 전혀 받지 않다가 이달 들어 정상 진료가 재개됐다.

민간 의료진의 자원 근무가 대구·경북 중심으로 이어졌다. 하얀 방호복 차림에 밴드를 붙인 얼굴은 ‘K-방역’의 얼굴이 됐다. [연합뉴스]

민간 의료진의 자원 근무가 대구·경북 중심으로 이어졌다. 하얀 방호복 차림에 밴드를 붙인 얼굴은 ‘K-방역’의 얼굴이 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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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간 경북에서 자원 근무한 오성훈 간호사(널스노트 대표)는 “간호사로서 국민을 돕고 싶었고, 국민을 돕는 의료진들도 돕고 싶었다. 여러모로 상황이 열악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하던 일을 멈추고 현장으로 향했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 성명서에서 “코로나19 사태에서 활약한 의료진 대부분은 민간 의사였다. K-방역은 민간 의료의 높은 역량이 공공성으로 발휘된 것”이라고 밝혔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계기로 공공(公共)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방역과 보건, 경제 등 영역을 가리지 않는다. 정부가 코로나19 방역,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등에 나섰지만 민간 영역의 자발적 참여가 없었다면 큰 혼란을 막지 못했다. 전국에서 발 벗고 나선 의료진 자원봉사, 기업과 개인을 가리지 않는 기부 행렬이 대표적이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경제 지표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실직과 폐업이 쏟아진다. 이렇게 경기에 찬바람이 불었어도 다행히 시민 각자의 온정의 손길은 줄지 않았다. 정부 주도의 긴급재난지원금 기부와 달리 민간 영역의 자발적 기부는 활발하게 이뤄졌다.

경제 상황은 나빠지지만, 온정의 손길은 계속 된다. 마스크로, 현금으로 쏟아진 기부 덕에 ‘사각지대’ 취약계층 도울 수 있었다. [뉴스1]

경제 상황은 나빠지지만, 온정의 손길은 계속 된다. 마스크로, 현금으로 쏟아진 기부 덕에 ‘사각지대’ 취약계층 도울 수 있었다. [뉴스1]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따르면 올해 후원 액수는 지난해보다 오히려 늘었다. 특히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취약계층 후원에만 96억원(지난달 말 기준)이 모금됐다고 한다. 덕분에 정부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한부모가정 등 사각지대를 챙길 수 있었다. 재단 관계자는 “기업과 셀럽(유명인)들의 기부가 나눔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했고 시민들이 함께하면서 기부액이 꾸준히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식 공공성’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민간에서 맡은 공공 역할이 체계적인 보상 시스템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단순한 선의에만 기댄다면 제2의 유행이 찾아왔을 때 극복을 장담할 수 없다.

의료진에게 감사를 전하는 ‘덕분에 챌린지’ 캠페인이 확산됐지만, 의료계 지원을 둘러싼 엇박자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대구동산병원은 지난달 말까지 70억원 정도의 손실이 발생했다. 코로나와 싸운 병원들의 손실이 커지면서 직원 월급 주기 쉽지 않은 곳도 나온다. 확진자를 돌본 대구 간호사에 대한 별도 수당 지급도 감감무소식이다.

오성훈 간호사는 “의료진 자원봉사만 보더라도 체계적인 인력 관리 시스템과 보상·정보 제공 등이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코로나 상황에서 많이 미흡했다”고 말했다.

확진자 동선 공개, 전자출입명부 도입 등은 한국 방역의 특징이다. 그러나 정부 통제가 지나치게 강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스1]

확진자 동선 공개, 전자출입명부 도입 등은 한국 방역의 특징이다. 그러나 정부 통제가 지나치게 강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스1]

지방 정부는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줬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각 지자체는 ‘톱다운’ 방식의 중앙 의존적 행정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일부 지자체장이 고위험 시설 폐쇄, 강제 역학조사 등 적극적인 방역 행정에 나선 것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긴급재난지원 이슈에 먼저 불을 피운 것도 중앙 정부가 아닌 지자체였다.

반면에 ‘지자체 역할 확대=돈 퍼주기’로 굳어지는 걸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긴급지원 경쟁이 자칫 재정 악화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직 사회의 ‘모럴 해저드’도 장애물이다. 대구에선 공무원, 교직원 등 3928명이 긴급생계자금 25억원가량을 부당 수령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었다.

공공성이 가장 절실한 교육·돌봄의 한계는 뚜렷했다. 온라인 원격수업과 생활 방역 등을 준비 못 한 각급 학교들은 상당 기간 혼란을 겪었다. 설익은 언택트(비대면) 교육에 입시까지 흔들리는 모양새다. 맞벌이 가구 등은 긴급보육 제도, 재택·유연 근무 확대에도 불구하고 몇 달째 육아에 힘겨워하고 있다.

정부 역할 확대에 따른 ‘공익성’과 ‘사생활’의 충돌도 고민해야 할 과제다. 확진자 동선 공개에 따른 신상 노출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최근엔 노래방·클럽 등 다중이용업소에 대한 전자출입명부(QR코드)까지 도입됐다. 다수의 안전을 지키려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빅 브러더’의 본격적인 등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브리핑에서 “(QR코드는) 역학조사에 필요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만 암호화해 수집하고, 정보 수집 주체도 분리해서 개인정보를 철저히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에 참여연대는 “행정의 편의성이 프라이버시 보호를 압도해선 안 된다. 코로나19 이후 IT 기반의 통제 시스템을 일상에서 용인하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중앙일보·정책기획위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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