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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폭파한 338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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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수진 경제기획팀 차장

전수진 경제기획팀 차장

대한민국 평범한 직장인 약 60만명이 재테크 노하우를 나누는 온라인 카페. 다양한 절약 비법과 다짐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개미 투자자들의 심중을 살피기 위해 체크할 때마다 “출근길 커피값 4000원 아껴서 이번 달 8만원 더 저금했어요” “냉파(냉장고 파먹기)로 오늘도 무(無)지출 성공!” "학자금, 언젠간 갚겠죠” 등, 짠한 글에 왠지 숙연해진다. 대한민국 서민들, 사느라 다들 고생 많다.

지난 16일 북한이 폭파한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엔 이런 국민의 세금이 약 338억 2100만원 투입됐다고 한다. 건물 건립 및 개·보수에 177억8000만원, 운영비가 160억원4100만원이다. 커피 845만5250잔을 살 수 있다. 북한이 폭파용으로 쓴 화약에다, 연락사무소 남측 공무원들이 바친 시간과 열정은 또 얼마인가. 화풀이치고는 비상식적 비용이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의 18세기 명언, ‘상식은 흔한 것이 아니다’는 21세기 한반도에도 유효하다.

노트북을 열며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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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7일 일제히 북한에 “몰상식한 행위”(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깊은 우려를 표명”(전동진 합참 작전부장) “우리 국민 재산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서호 통일부 차관)이라는 입장을 내놨지만 만시지탄이다. 이제 와서 규탄해봤자 마음을 고쳐먹을 북한인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한·미 워킹그룹을 비판했으니 해체하라는 일각의 주장도 핵심을 놓쳤다. 북한이 내심 앙망하는 건 제재 해제를 위한 북·미 워킹그룹일 터. 북측 속마음을 오독한 채 비위만 맞추려다 보니 다들 스텝만 꼬인다.

괜히 핏대 세우지 말고 차분히 돈으로 풀자. 재산권 침해 논리로 파고들면 어떨까.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순위는 커피값 4000원 모아 저축하는 국민이어야 한다. 그 국민의 세금을 들인 건물에 손괴를 입혔다는 점에 착안해보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338억 2100만원을 돌려받으라는 비현실적 주장이 아니다. 국제적으로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북한을 협상장으로 불러내 보자는 제언이다. 북한 이슈에 천착해온 비정부기구(NGO) 전환기정의워킹그룹(대표 이영환)의 신희석 법률분석관에게 손해배상 청구 가능성을 묻자 “당장은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며 “끈기와 일관성의 문제”라고 답했다.

북한도 죽을 맛일 거다. “제재 때문에 교과서를 찍을 종이도 없다”던 북한이 1200만장의 전단을 찍겠다고 호언했다. 틀에서 벗어난 해결책으로 이 국면을 빨리 끝내는 게 남북 모두에 득이다. 그리고, 절대 잊으면 안 될 팩트 하나. 내일은 북한군 병력 11만1000명과 280여 대의 탱크가 남침한지 70년째 되는 날이다.

전수진 경제기획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