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게 바라봤습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업무보고에 출석해서 한 발언이다. 질병관리본부(질본)를 ‘청(廳)’ 단위 조직으로 키우는 것과 관련, 최근 일부 언론이 복지부-질본간 대결 구도로 묘사한 언론보도를 두고서다. 의원 질의에 박 장관은 “아무 오해가 없었는데 싸우는 것처럼 보도됐다”고 밝혔다.
박 장관, "싸우는 것처럼 보도됐다"
정말 아무 오해가 없었을까. 지난 3일 현 질본을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독립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공개됐다. 감염병·만성질환의 컨트롤타워로서 질본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질본 안에 뒀던 국립보건연구원을 뚝 떼더니 복지부 산하로 옮겼다. 게다가 복지부는 2차관을 신설하며 조직을 키웠다. 2차관은 ‘보건’분야를 담당하게 된다. 차관급인 질병관리청장과 업무가 중복될 수도 있다. “갈등이 생길 요소가 있다”(백경란 대한감염학회 이사장 12일 토론회)는 의미다.
文 대통령, '전면 재검토' 지시한 사안
이에 “질본의 손발(예산·인력 등)이 잘렸다” “무늬만 승격”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급기야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이 “전면 재검토” 지시를 내렸다. 나흘 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장은 정책 토론회에서 “해괴망측한 시도가 있었다”고 비판까지 했다. 결국 지난 15일 보건연구원을 남기는 질병관리청 개편방안으로 정리(당·정협의회)됐다.
복지부와 질본이 대외적으로 치고받지는 않았다. 때문에 박 장관의 답변도 일부 수긍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앞선 일련의 흐름 속에 양측의 갈등과 긴장이 전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책에 따른 설명 없어
박 장관은 오해가 없고 싸우지 않았다지만 ‘개정안’은 2주도 안 돼 손바닥처럼 뒤집혔다. ‘대결 구도에 대한 보도가 어떻게 된 거냐’는 물음에 “어이없다”고만 답할 게 아니라 거대 시스템의 집합체인 정부조직에서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 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지점이다.
앞서 15일 정부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장관·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도 순간 귀를 의심하게 하는 발언도 나왔다. 한 기자가 “대부분 질본-복지부 대결 구도로 보도했다. 복지부도 고생 많이 했는데 안타까운 마음 있을 것 같다”고 물었다.
박 장관의 언론관
그러자 박 장관은 “여러분도 언론인이니. 언론에 보도된 게 다 정확하지 않다는 거 아실 것 아니냐”고 황당한 서두를 열었다. 그러면서 질본과 긴밀한 관계라고 했다. 장관의 언론관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선 질의에서 박 장관은 당초 보건연구원을 복지부로 옮기려 한 것과 관련해서는 “보건연구원의 기능 3분의 2(만성병·보건산업)가 복지부랑 같이한다”고 밝혔다. 현장에서는 당연히 복지부로 옮기는 게 효율적이라는 의미로 읽혔다.
박 장관의 발언은 정확?
그렇지만 연구원의 업무에 대한 박 장관의 발언도 다 정확하지는 않았는지 의구심이 든다. 보연원의 기능을 복지부 쪽에 3분의 2, 질본 쪽에 나머지 3분의 1 이렇게 딱 자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박 장관이 꼽은 ‘1’의 몫인 만성병의 경우 더욱 그렇다. 질병‘관리’본부는 현재도 만성질환 컨트롤타워라는 평가다.
보건당국 관계자는 “(박 장관의 발언을) 딱 3분의 2로 해석하기보다는 상당 부분 질본보다 오히려 복지부의 정책과 연동성이 크다 정도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박 장관은 코로나19 사태 초기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다. 2월 중국인 입국제한조치를 취하지 않는 방역을 ‘창문 열어 놓고 모기 잡는 격’이라고 지적하자 “지금은 겨울이라 모기는 없는 것 같다”고 한 게 대표적이다. 지금은 말에도 참을 ‘인’(忍)이 필요한 때다.
세종=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