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묻지마 폭행범, 구속영장 또 기각…"여성혐오 아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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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폭행' 30대 남성 2차 영장실질심사. 연합뉴스

'서울역 폭행' 30대 남성 2차 영장실질심사. 연합뉴스

서울역에서 여성 행인을 폭행하고 달아난 혐의를 받는 이른바 ‘서울역 묻지마 폭행’ 사건의 피의자 이모(32)씨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법원은 여성혐오에 기인한 무차별적 범죄라기보다는 조현병에 따른 우발적 범죄라고 봤다.

서울중앙지법 김태균 부장판사는 15일 오후 상해 혐의를 받는 이씨의 두 번째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뒤 "제출된 수사기록에 의하면 범죄혐의사실이 소명되고, 본건 범행으로 인한 피해 내용과 정도 등에 비추어 사안이 중대하다"면서도 "피의자의 주거지가 일정하고 기록과 심문 결과에 의해 확인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해 보면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법원은 이씨의 범죄행위에 대해 "여성 혐오에 기인한 무차별적 범죄라기보다 피의자가 평소 앓고 있던 조현병 등에 따른 우발적, 돌출적 행위로 보인다"며 "피의자는 사건 발생 후 가족들이 있는 지방으로 내려가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있고 피의자와 그 가족들은 재범방지와 치료를 위해 충분한 기간 동안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고 했다.

범죄혐의사실의 입증에 필요한 증거 대부분이 이미 충분히 수집됐고, 피의자가 수사에 임하는 태도 등을 보아 새삼 도망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아울러 법원은 피의자의 특수한 상황에 비춰, 재범방지 대책은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의 관련 규정에 따른 조치를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보통 피의자가 조현병을 앓고 있을 경우 구속에 더 불리한 사유로 작용되곤 한다"고 말했다. 재범을 우려해 구속수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이번엔 입원 치료 및 가족의 돌봄 등 피의자의 상황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법원의 이날 판단에 철도특별사법경찰대(철도경찰대) 관계자는 "기각사유를 살펴보고 여러 방향을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앞서 이씨는 지난달 26일 오후 1시50분쯤 공항철도 서울역의 한 아이스크림 전문점 앞에서 처음 보는 30대 여성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린 뒤 도주한 혐의를 받는다. 피해 여성은 이씨의 폭행으로 눈가가 찢어지고 한쪽 광대뼈 골절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은 지난 1일 피해 여성 가족의 SNS를 통해 알려졌다. 국토부 소속 철도경찰대는 경찰과 공조를 통해 용의자로 이씨를 특정하고, 지난 2일 자택에서 이씨를 붙잡았다.

철도경찰대는 상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지난 4일 재판부는 "긴급체포가 위법한 이상 그에 기초한 이 사건 구속영장 청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비록 범죄혐의자라 할지라도 헌법과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주거의 평온을 보호받음에 있어 예외를 둘 수 없다"며 한 차례 기각했다. 철도경찰은 이씨가 서울역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위협하거나 폭행한 행위를 추가로 포착해 혐의를 보강한 뒤 구속영장을 다시 신청했으나, 이마저 이날 기각됐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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