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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퇴 카드 꺼낸 주호영···통합당 "시작부터 당했다, 다들 패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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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15일 원내대표직 사퇴 카드를 꺼내 들었다. 더불어민주당의 6개 상임위원장 ‘일방 선출’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겠다면서다. 의원들의 만류에도 주 원내대표가 사퇴 의사를 철회하지 않으면서, 통합당은 21대 국회 임기 시작 약 보름 만에 원내 지도부 공백 사태를 맞게 됐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참석해 의사진행 발언을 하고 있다. 법사위원장을 비롯한 6개 상임위원장 선출 안건이 올라온 이번 본회의에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불참했다. [뉴스1]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참석해 의사진행 발언을 하고 있다. 법사위원장을 비롯한 6개 상임위원장 선출 안건이 올라온 이번 본회의에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불참했다. [뉴스1]

주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에 홀로 참석해 의사진행 발언을 하고 퇴장했다. 통합당 의원들은 상임위원장 선출이 진행되는 동안 본회의장 맞은편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에서 따로 의원총회를 열었다.

비공개 의총에서 주 원내대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의장이 야당 의원을 상임위에 강제배정하고 상임위원장을 선출하는 폭거를 진행 중이다”며 “원내대표로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종배 정책위의장 역시 주 원내대표와 함께 사의를 밝혔다.

사의 표명 소식을 들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대부분 의원들은 주 원내대표의 사퇴를 만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주 원내대표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사의 표명 직후 한동안 의총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주 원내대표는 이후 국회를 나서며 “이미 사퇴할 뜻을 밝혔고, 의지가 확고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사의 표명 이후 “주 원내대표를 재신임해서 힘을 모아주자”는 의원들의 의견이 다수였던 만큼, 실제 사퇴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의총 도중 기자들과 만난 최형두 원내대변인은 “협상이 아닌 협박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원내대표가 책임질 일이 아니며, 원내대표에게 다시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쪽으로 논의가 진행됐다”고 말했다.

피켓을 든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15일 국회 본회의장으로 들어서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항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피켓을 든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15일 국회 본회의장으로 들어서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항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또 “이런 상황마다 원내대표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어떤 원내대표가 무지막지한 여당에 맞서 협상을 하겠나”라며 “원내대표의 역량 문제가 아니다. 거대 여당의 협상 방식, 국정을 바라보는 방식, 국회를 운영하는 방식은 원내대표가 누구든 감당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지도부 책임을 추궁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었지만, 일부 의원들 사이에선 “아무것도 못 하고 또 당했다”는 자조가 나왔다. 한 통합당 관계자는 “20대 국회의 패스트트랙 국면은 물론 지난해 말 공직선거법 개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처리 과정에서도 속절없이 밀렸는데, 이번에도 시작부터 당했다”며 “패배주의가 아예 뿌리를 내릴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의원직을 총사퇴하자는 주장도 나왔다고 한다.

최 원내대변인은 “상식과 전통, 원칙을 모두 깨고 있는 지금의 민주당은 우리가 여당이던 당시의 그런 정당이 아니다”며 “비상한 대책이 있어야 하고, 중대한 각오를 해야 한다는 비장한 분위기였다”고 의총 분위기를 전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주호영 원내대표 등 미래통합당 의원들의 항의를 받으며 본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뉴스1]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주호영 원내대표 등 미래통합당 의원들의 항의를 받으며 본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뉴스1]

주 원내대표의 사의 표명으로 원 구성 협상도 잠정 중단됐다. 공백 사태에 대한 대응 방향도 정해진 게 없다. 한 통합당 초선 의원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언제 다시 모여서 재신임할지 결정 못 하고 의총이 끝났다”며 “민주당이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으니 원내 지도부 공백 상태로 있자는 의견도 있었다. 다들 패닉 상태”라고 말했다.

윤정민ㆍ김기정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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