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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는 "규제 제거"…21대 국회 출발부터 기업규제 드라이브

중앙일보

입력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0.6.12[뉴스1]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0.6.12[뉴스1]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공정경제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21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민주당 의원들이 고용보험법, 가맹사업법을 개정안을 발의했고 정부가 상법·공정거래법·노동법 개정안을 줄줄이 입법예고했다. 재계에서 “하나같이 반(反)기업 입법”이란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의롭고 공정한 경제가 보장돼야 혁신의지가 싹트고 경제 활력을 찾게 된다”(박광온 최고위원)는 논리를 고수 중이다.

‘기업=강자’, 약자 챙기기

14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는 이날까지 법안 409건이 발의됐다. 이 중 20대 국회 때 발의를 추진하지 못했거나, 제안했다 폐기된 공정경제 관련 법안이 속속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8일 전해철 의원은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신고를 거친 가맹점 사업자단체에 본사와의 교섭권을 주는 게 골자인데, 본사가 가맹점주들의 협의 요청을 거부하면 공정위가 과징금 등 행정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했다. 같은날 도종환 의원이 낸 가맹사업법 개정안은 가맹점을 시공할 때 본사가 업체를 지정하지 않고, 점주가 직접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민주당이 강조해 온 “갑질 근절, 을과의 상생” 취지를 살린 법안들인데 기업은 울상이다. 한 프렌차이즈 기업 임원은 “코로나19에 가뜩이나 어려운데 정부 간섭을 풀지는 못할 망정 늘리면 회사 전체가 다 힘들어진다”고 했다. 민주당은 반면 노동계엔 호의적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한정애 의원은 지난 9일 택배기사 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에 고용보험을 의무적용하고 실업급여·출산전후급여도 보장하는 내용의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며 “정부 측과 합의한 결과”라고 밝혔다.

정부 입법예고로 반발 커져

고기영 법무부 차관이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다중대표소송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임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 관련 개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기영 법무부 차관이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다중대표소송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임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 관련 개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 부처들의 잇따른 공정경제 입법 드라이브는 기업 활동 위축 우려를 급격하게 키우는 계기가 됐다. 지난 10일 법무부가 대주주의 경영권 행사를 제한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 감시·규제를 강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다.

부처가 청와대와 긴밀한 조율을 거쳐 추진하는 정부 입법은 의원 입법보다 국회 통과율이 높다. 지난달 29일 고용노동부가 노조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추진한 데 법무부·공정위까지 가세하자 야당에서는 “정부·여당의 반기업·친노조 기조가 여과없이 드러났다”는 해석이 나왔다.

당·정은 이 법안들을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아직 원구성도 되지 않았는데 미래통합당에 “적극적으로 협력해달라”(박 최고위원)는 공개 당부를 보내고 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잡초 같은 규제를 제거하는 동시에 공정경제의 토대를 바로 세우겠다”고 했다. 반기업 입법 부작용을 규제 완화로 만회하겠단 의미인데, 통합당은 “(관련 법안) 모두가 20대 국회 때 ‘과잉 규제’, ‘기업 활동 제지’라는 우려로 폐기된 것들”이라며 “정부는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재계의 건의와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경제위기는 고려하지 않고 입법 과속 페달을 밟으려고만 한다”(배현진 대변인)고 반발했다.

전문가들은 “기업 투명성은 논의가 되고 있지만 노동시장 경직성 완화, 규제 합리화는 논의되고 있지 않다”(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점을 꼬집었다. 성 교수는 “일괄적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정책을 한데 묶어 ‘공정경제’란 이름으로 추진하는 대신, 개별 정책이 갖는 효과를 일일이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경영학)는 “국내 정치권의 공정경제 논의와 별개로 기업활동은 글로벌 기준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라며 “기업 투자를 늘리겠다면서 기업하기 어려운 정책을 쏟아내면 자연스레 국내 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투자 선순환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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