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Japanification·일본화)의 공포’가 정치권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장기 불황으로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일본의 전철을 국내 경제가 그대로 밟을 것이란 우려 섞인 전망이 쏟아지면서다. 국회에선 이에 대응하기 위한 법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앞으로 절대 인구와 생산가능인구도 줄고 고령화도 급속히 진행될 텐데 온통 'K-국뽕'에 빠져있다”며 “이 나라도 20여 년 전 일본이 걸었던 길로 접어든 게 아닌가 우려된다”고 적었다. 그는 그러면서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감소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다섯 번째로 높다는 내용의 기사를 인용했다.
진 전 교수는 “정치도 이미 일본식 1.5당 체제로 변해가고 있고, 어용 언론과 어용단체가 난무하는 가운데 정권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내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이라며 “1990년 중반 일본도 세계를 다 집어삼킬 듯 일뽕이 대단했는데, 왠지 그때 그 느낌이 난다”고 주장했다.
야권에선 한발 더 나아가 “이미 ‘잃어버린 20년’에 접어들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통계청장 출신인 유경준 미래통합당 의원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노동·자본 투입과 기술 진보 등 잠재성장률을 결정하는 모든 것들이 문재인 정부 들어 뒷걸음질 쳤다”며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와 관계없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제한, 기업에 대한 반감 등 애초에 경제 정책의 방향이 잘못됐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일본과 같이 잃어버린 20년에 들어선 것은 물론이고, 지금 같은 경제 정책 기조를 이어가면 그리스·이탈리아나 남미 일부 국가들처럼 훨씬 더 나빠질 수도 있다”고 했다.
정부·여당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나온 적이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우리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전철을 밟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는 장기적 경제 침체에 대비하기 위한 법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추경호 통합당 의원은 나랏빚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국가채무비율을 45% 이하로 유지하도록 하고, 45%를 초과할 경우 세계잉여금(초과 세수+지출불용액)을 국가채무 상환에 우선 지출하도록 하는 재정준칙 도입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같은 당 류성걸 의원 역시 비슷한 내용을 담은 국가재정 건전화법을 발의했다. 또 리쇼어링(해외에 진출한 국내 제조 기업을 다시 국내로 돌아오도록 하는 정책) 지원 강화나 법인세율 인하 등 기업 활동 관련 법안도 계속 발의되고 있다.
추 의원은 “무너진 서민경제를 살리기 위해 국가재정의 확대가 필요하긴 하지만, 국가채무가 급속도로 증가함에도 이를 관리할 기준 자체가 없는 것은 큰 문제”라며 “지속가능한 국가재정 운영을 위해서라도 장기적인 재정 건전성 수준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