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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정의선 시선 향한 곳, 자율주행 핵심 ‘디지털 콕핏’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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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8호 12면

재계 1·2위 기업을 이끄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이 지난 13일 만났다. 충남 천안의 삼성SDI 사업장에서다. 두 사람이 사업 목적으로 따로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이날 이들은 한 번 충전에 800㎞를 달리는 삼성SDI의 전고체 배터리(리튬이온이 이동하는 전해질을 고체로 만든 차세대 배터리) 기술을 살피고 3시간가량 전기차 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미래 먹거리 쟁탈전 #전기차 협력 논의 삼성·현대차 총수 #전장 사업 시너지에도 깊은 관심 #LG도 전장 R&D에 6293억 투자 #올해 세계 전장시장 규모 377조 #디지털 콕핏, 2025년 40조 예상 #해외기업도 기술 확보·선점 경쟁

#표면상 두 총수의 눈이 향한 곳은 전기차지만, 실제 이들은 반도체·스마트폰을 이을 한국의 ‘미래 먹거리’ 자동차 전자장비(전장) 분야 협력에도 깊은 관심을 가진 것으로 분석된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이미 LG화학·SK이노베이션과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 관계라 삼성SDI가 여기 추가돼도 특별할 게 없다”라며 “미래차 시대에 핵심이 될 자동차 전장 분야 협력에도 (두 사람이) 교감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세계 1위를 다투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과 5위 완성차 기업이 자동차 전장으로 손잡으면 파급 효과가 전기차에서 협력할 때보다 훨씬 더 크다. 특히 ‘전장의 꽃’이라 불리는 디지털 콕핏(Digital Cockpit) 분야에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디지털 콕핏은 사물인터넷(IoT) 등 ICT로 작동하는 자동차 조종석을 가리킨다. 터치 패널로 운전자가 주행 방식을 제어할 수 있어 다양한 맞춤형 운전이 가능해 자율주행 시대 핵심 기술이 집약된 곳이다. 또 뉴스·날씨 등 실시간 정보 검색, 음악·영화 감상까지 가능하게 한다. 삼성전자는 디지털 콕핏 시장을 선도할 만한 기술력을 쌓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7년 약 9조원에 디지털 콕핏 제조가 장기인 세계 최대 자동차 전장 기업, 미국의 하만을 인수했다. 하만은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ICT 박람회 ‘CES 2020’에서 삼성전자와 공동 개발한 5세대(5G) 이동통신 기반 디지털 콕핏을 선보였다. 내년에 양산되는 독일 BMW의 전기차에 탑재된다. 삼성전자는 자동차용 반도체 사업에도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그룹 내 전장 부품 연구·개발(R&D)을 맡은 현대모비스가 디지털 콕핏을 지능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운전자의 건강 이상, 졸음 등 정상 운전이 불가능한 경우 자율주행 모드로 자동 전환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 DDREM(Departed Driver Rescue and Exit Maneuver)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내년 상용화 예정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손잡는 것과 별개로 국내 자동차 전장 산업은 미래가 밝은 것으로 평가된다. LG전자도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 못잖게 자동차 전장 사업에 힘쓰고 있다. LG전자는 지난해 자동차 부품 솔루션 사업본부의 전장 분야 등 R&D와 상용화에 6293억원을 투자했다. 그 결과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프리미엄 브랜드 캐딜락에 초고해상도 플라스틱 유기발광다이오드(P-OLED) 디스플레이 기반 디지털 콕핏 시스템을 올해부터 공급하기로 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모기업인 독일 다임러AG에는 자동차용 터치스크린 등을 공급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5G와 반도체를 앞세웠다면, LG전자는 디스플레이라는 장기를 살리고 있다.

현대모비스가 내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 중인 DDREM 시스템. [사진 현대모비스]

현대모비스가 내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 중인 DDREM 시스템. [사진 현대모비스]

시장 조사 업체들에 따르면 세계 자동차 전장 부품 시장 규모는 2015년 2390억 달러에서 올해 3033억 달러(약 377조원), 디지털 콕핏 시장 규모는 2018년 139억 달러에서 2025년 323억 달러(약 40조원)로 각각 커질 전망이다. 이에 해외 기업들도 기술 확보와 시장 선점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14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콕핏을 상용화한 독일의 폴크스바겐은 아우디·스코다·람보르기니 등의 최신 차량에도 디지털 콕핏을 적용 중이다. 후발주자인 중국은 전기차 제조 기업 바이톤이 48인치 디스플레이의 초대형 디지털 콕핏을 제조하고 있다. 전기차 M-바이트에 탑재할 예정이다. 이 밖에 일본도 소니가 CES 2020에서 콘셉트 전기차(비전 S)를 공개해 전장 부품 사업 진출을 눈앞에 뒀다는 분석이다. 이를 위해 소니는 엔비디아와 퀄컴 등 미국 ICT 기업들과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자동차의 패러다임이 내연기관 중심에서 전장 중심으로 급격히 바뀌고 있어 기업들이 R&D와 상용화에 더 속도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를 위해 ICT 기업과 자동차 기업 간 협력 강화가 중요해졌다”고 분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세계 자동차 산업의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전장을 통한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도 한층 중요해졌다는 분석이다.

다만 일각에선 대기업 간 협력뿐만 아니라 중소·중견기업 육성과 동반성장 노력도 절실해진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병섭 서울벤처대학원대 융합산업학과 교수는 “규모는 작지만 기술이 뛰어난 강소기업들의 각종 전장 부품을 앞세워 미래차 시대에 선제 대응하고 있는 독일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미래차 ‘퍼스트 무버’ 전략…지자체도 적극 지원

미래 먹거리인 자동차 전장 부품 산업을 잡기 위해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도 컨트롤타워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2030 미래차 산업 발전 전략’을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하고 경기 화성의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비전 선포식을 열었다.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등 미래차 육성에 힘쓴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국내 부품 기업 중 전장 부품 기업 비중을 기존 4%(2018년 기준)에서 2030년 2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덧붙였다. 미래차 핵심 소재의 부품 자립도를 같은 기간 50%에서 80%로 높인다는 내용도 더했다. 이를 위해 약 60조원의 민간 투자가 계획됐다.

한국은 2018년 403만대로 세계 7위 자동차 생산국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세계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이 미래차로 급격하게 이동하고 있는 상황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할 경우 다시 자동차 중진국으로 떨어질 수 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자동차 강국인 우리에게 미래차 전환은 자동차 산업이 크게 도약하고, 산업 전반의 혁신 동력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금까지 자동차 산업에서 구사하던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을 차제에 점진적으로 ‘퍼스트 무버(선도자)’로 바꿔나가기로 했다.

자동차 부품 산업과 밀접한 지자체들도 적극적이다. 전북도는 26일 전장 부품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현안 해결 리빙랩 연구서비스개발(R&SD) 지원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전장 부품의 수요 대응이나 현안 발굴과 관련, 도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전문가 세미나와 컨설팅 등의 자리를 연간 수차례 마련하기로 했다. 경북도도 경북테크노파크를 중심으로 지난 15일부터 도내 자동차 부품 연구기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역활력프로젝트사업’에 참여할 기업들 모집에 나섰다. 특히 E/E(Electric/Electronic) 시스템 같은 자동차 전장 부품을 만드는 기업 등을 대상으로 시제품 제작과 제품 고급화, 사업화를 지원할 예정이다.

다만 규제 완화 등 보다 실효적인 대책 마련도 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부 교수는 “한국은 자율주행 등 미래차 기술에서 미국 같은 선진국보다 3~4년, 제도는 6년 이상 뒤처졌다”며 “대대적 육성이라는 전략의 기본 틀은 유지하되 규제 강도를 지금보다 낮춰 내수 인프라 뒷받침을 해줘야 ‘속도전’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콕핏(Digital Cockpit)

사물인터넷(IoT) 등 정보통신기술로 작동하는 자동차 조종석. 터치 패널로 운전자가 주행 방식을 제어할 수 있어 자율주행 시대 핵심 기술로 분류된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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